신종 코로나 스파이크 단백질의 변신, '정지화면'에 딱 잡혔다
'막 융합' 이후 머리핀형으로 변해…ACE2 수용체 우회한 '혼합형'도
미 연구진 "스파이크 단백질 의존 백신 제조, 문제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 CoV-2) 입자의 표면을 덮고 있는 일명 '스파이크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순간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스파이크 단백질로 인체 세포 표면의 ACE2 수용체와 결합해야 비로소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스파이크 단백질이 갈고리같이 ACE2를 맞걸면 바이러스 외막과 세포막이 융합해 감염이 시작된다.
그런데 돌기처럼 생긴 스파이크 단백질의 외형이 '막 융합' 전후에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미국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연구팀은, 할리우드 영화의 트랜스포머 로봇처럼 변신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외형을 '정지 화면(freeze-frame)'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 과학자들은 21일(현지시간) 관련 논문을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인체 내 항체의 주요 표적 가운데 하나다.
현재 임상이 진행 중인 대부분의 신종 코로나 백신도 이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뒤늦게 확인된 스파이크 단백질의 이런 변신은, 면역계의 감시나 공격 회피와 연관된 거로 보인다. 향후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genic electron microscopy)으로 관찰한 결과, 스파이크 단백질 돌기는 ACE2와 결합한 뒤 단단하게 접힌 머리핀 형태로 변했다.
흥미롭게도 스파이크 단백질은 종종 ACE2 수용체와 결합하지 않고도 '결합 이후' 형태로 바뀌었다.
이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막 융합' 이전과 이후의 두 가지 형태가 뒤섞였지만, 융합 이후 유형이 약간 많은 혼합형이 됐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천 빙 박사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구조적 변화가 두 개의 경로를 통해 이뤄지는 것 같다"라면서 "하나는 ACE2에 의존해 곧바로 숙주세포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CE2와 별개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CE2와 결합하지 않은 채 형성되는 머리핀형 스파이크 단백질은, 바이러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거로 연구팀은 추정한다.
예컨대 바이러스가 어떤 물체의 표면에서 소멸하는 걸 이 단단한 돌기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각종 재질의 물체 표면에서 짧게는 수 시간, 길게는 수일 동안 살아남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런 형태의 조숙한 변신은 또한 '비 중화(non-neutralizing) 항체'를 포함한 면역계 감시를 회피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로 보인다. 면역계의 주의를 분산하는 미끼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변형 후 스파이크 단백질에 글리칸(Glycan) 당 사슬(탄수화물이나 당의 사슬 구조 화합물)이 여전히 들어 있는 것도 연구팀의 관심을 끌었다. 글리칸은 바이러스의 면역 감시망 회피를 돕는 화합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스파이크 단백질로 인체 면역계를 자극하는 현재의 백신 제조 방법엔 문제가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한다.
수시로 일어나는 변형 전후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뒤섞여 백신의 효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천 박사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항체가 유도돼도 백신의 감염 차단 효과는 떨어질 것"이라면서 "1회 사용분마다 다른 형태의 단백질이 들어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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