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코로나' 실종사건 제1용의자는 조석력으로 파괴된 별

입력 2020-07-18 13:34
'블랙홀 코로나' 실종사건 제1용의자는 조석력으로 파괴된 별

초대질량블랙홀 코로나 40일만에 급속히 사라졌다 복귀 첫 관측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빛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블랙홀의 사건지평선 바깥에는 블랙홀의 에너지원인 가스로 된 강착원반이 감싸고 있으며, 이 원반 가장 안쪽에는 고에너지 입자가 휘돌며 강렬한 X선 빛을 내는 '블랙홀 코로나'가 있다.

블랙홀이 물질을 많이 빨아들일수록 코로나는 더 밝은 빛을 낸다.

이 코로나에서 나오는 X선 빛으로 블랙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빛이 거의 완전히 급속히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는 과정이 처음으로 관측돼 천문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따르면 칠레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 물리학과 조교수 클라우디오 리치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구에서 약 2억7천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활동은하핵(AGN) '1ES 1927+654'의 블랙홀 코로나를 관측한 결과를 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회보'(Astrophysical Journal Letters)에 발표했다.

활동은하핵은 은하 중앙에 자리 잡은 초대질량블랙홀 중에서도 특히 밝은 것을 지칭한다. 태양의 1천900만배에 달하는 질량을 가진 1ES 1927+654의 존재는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2018년 3월 '초신성 전천(全天) 자동 탐사'(ASSASN)를 통해 갑자기 40배나 더 밝아진 것이 포착되면서 더 주목받게 됐다.

이때부터 X선에서 자외선 영역에 이르는 다양한 빛 파장을 포착할 수 있는 망원경들이 정기적인 관측에 나서게 됐으며,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설치된 NASA의 소형 X선 망원경인 'NICER'(중성자별 내부성분 탐사선)는 거의 매일 이를 들여다봤다.

그 결과, 모든 파장의 빛이 급격히 주는 과정이 관측됐으며, 특히 고에너지 X선이 급속히 줄며 블랙홀 코로나가 완전히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X선 빛은 장기간에 걸쳐 100배 정도 밝아지거나 흐려지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ES 1927+654 코로나는 불과 40여일 사이에 X선 빛이 1만분의 1로 줄어든 것으로 관측됐다.

논문 공동 저자인 MIT 물리학 조교수 에린 카라 박사는 "이런 급격한 밝기 변화는 수천년에서 수백만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던 것"이라면서 "심지어 8시간 만에 밝기가 100분의 1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정말 놀라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1ES 1927+654 코로나 X선 빛은 완전히 사라진 직후 곧바로 회복하기 시작해 불과 100일만에 이전의 20배로 다시 밝아졌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을 정확히 집어내지는 못했으나 블랙홀 주변 강착원반 내 자기력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블랙홀의 사건지평선에 가까울수록 원반 내 물질이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휘돌며 내부의 자기력선을 교란해 고에너지 X선을 방출하게 만드는데, 이런 자기력선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왕관 모양의 코로나가 빛을 잃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블랙홀에 너무 가깝게 다가간 떠돌이 별이 블랙홀의 중력에 붙잡혀 조석력으로 파괴되면서 파편들이 강착원반에 떨어져 ASSASN에 포착된 것과 같은 일시적인 밝은 빛을 형성했으며, 이후 상당량의 물질을 블랙홀로 빨려들게 해 자기력선을 무력화함으로써 고에너지 X선을 더는 만들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설명했다.

연구팀은 떠돌이 별이 블랙홀 코로나 실종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일 가능성이 크지만 다른 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카라 박사는 "관련 자료들은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다"면서 "떠돌이별 가설을 타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이 사안을 분석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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