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란 잘란] 35년째 애완물고기 숍 운영…간판 없어도 인기

입력 2020-07-14 06:06
수정 2020-07-14 15:44
[잘란 잘란] 35년째 애완물고기 숍 운영…간판 없어도 인기

자카르타 남부 주택가 터줏대감 방 오작씨…4평 가게에 50종·2천마리



[※ 편집자 주 : '잘란 잘란'(jalan-jalan)은 인도네시아어로 '산책하다, 어슬렁거린다'는 뜻으로, 자카르타 특파원이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연재코너 이름입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남부 주택가 골목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다 보면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 앞에 현지인들이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골 문방구처럼 보이지만, 하루 200만 루피아(17만원)의 '놀라운' 매출을 올리는 애완물고기 가게다.



지난 12일 연합뉴스 특파원이 카메라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애완물고기 숍 주인 방 오작(51)씨는 '어떻게 알고 왔을까'하는 표정으로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무표정으로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성인 네 명만 들어가도 비좁을 정도로 작은 가게(4평·13㎡)에 50종·2천 마리의 물고기가 수조와 유리병, 페트병에 꽉 들어차 있다.

종업원도 없이 35년째 혼자 가게를 운영해온 방 오작씨는 가게에 간판도 걸지 않고, 휴대폰도 없이 묵묵히 장사했다.



30분 동안 찾아온 손님만 얼추 세어보니 20명이 넘었다. 딸의 손을 잡은 아빠부터 오토바이를 몰고 온 청년, 걸어선 온 중년 여성까지 끊임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나왔다.

가게 밖에 줄 선 손님들은 아무 불평 없이, 당연한 일인 듯 차례를 기다렸다.

방 오작씨는 손님이 손으로 물고기를 가리키기만 하면 뜰채로 정확히 뜬 뒤 손으로 잡아 비닐봉지에 넣고, 물을 부은 뒤 능숙하게 봉지 입구를 묶었다.

그러고는 손님이 원하는 물고기 밥, 수초 등 관상어 용품을 함께 봉지에 담아 건네고 돈을 받아 허리 가방에 넣었다.

방 오작씨는 말도 거의 몇 마디 하지 않고 손님을 응대한 뒤 다음 손님을 또 맞았다.



방 오작씨는 "1985년부터 애완용 물고기를 팔았고, 남부 자카르타 근방에는 관상어를 파는 곳이 이곳밖에 없어 단골이 많다"며 "하루 매출이 200만 루피아 안팎은 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자카르타의 입주 가정부 월급이 통상 250만 루피아∼350만 루피아인 점에 비춰보면 큰돈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물고기를 한 번에 최소 다섯 마리 이상 판매한다. 다섯 마리 세트에 통상 1만 루피아∼7만5천 루피아(900∼6천300원)를 받는다.

물고기 다섯 마리에 뜰채, 물고기 밥까지 모두 더해 2만5천 루피아(2천원)면 살 수 있다.

'가게에서 가장 비싼 물고기는 무엇이냐'고 묻자 방 오작씨는 큰 어항에 넣어둔 물고기를 보여줬다.



태국에서 수입한 플라워혼 시클리드(Ikan Louhan)라는 물고기인데, 한 마리에 100만 루피아(8만3천원)에 판다고 한다.

가게를 찾은 띤다씨는 "백화점이나 큰 마트에 가면 어항 등 관상어 용품은 팔아도 물고기는 팔지 않는다"며 "요새는 물고기를 온라인 상점에 주문해 배달받을 수 있지만, 방 오작씨 가게는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해 인기"라고 말했다.



딸의 손을 잡고 온 손님 자스키아씨는 "집에 큰 수족관을 두고 다양한 물고기를 키운다"며 "딸 아이가 방 오작씨 가게에 놀러 오는 것을 좋아해 휴일에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방 오작씨는 '왜 간판도 없고, 휴대전화도 없느냐'고 묻자 "지금도 충분하다"며 손을 저었다.

마지막으로 '가게 앞에 나와 사진 한 장만 찍자'는 말에 방 오작씨는 뜰채를 내려놓고 빙긋 웃음과 함께 엄지를 치켜들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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