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문서' 日기업, 우익교과서 채택률 높이려 조직적 개입
직원들에게 교과서 설문지 독려…근무면제·적극 참여자 표창
개입 의혹 판결로 확인…우익 성향 이쿠호샤 교재 채택률 오르기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임직원 교육을 빙자해 도를 넘은 혐한(嫌韓) 문서를 배포한 일본 기업 후지주택은 우익 성향의 교과서가 채택되도록 설문조사에도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13일 드러났다.
설문조사 개입 의혹은 일본 언론이 앞서 제기한 바 있으나 재일 한국인 여성이 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판결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고, 수법도 상세히 드러났다.
연합뉴스가 확인한 판결문에 따르면 이마이 미쓰오(今井光郞) 후지주택 회장은 2013∼2015년 종업원들에게 여러 차례 문서 및 음성 자료 등을 보내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학교 교과서 전시회에 참가하라고 독려했다.
그는 우익 사관을 담은 이쿠호샤(育鵬社) 등의 교과서를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취지로 전시회장에서 설문지에 답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등 직원들을 사실상 동원해 일선 학교의 교과서 채택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특히 교과서 전시회장에 갈 때는 회사 배지를 떼고, 여직원의 경우 제복을 착용하지 말라고 설명하는 등 조직적 개입을 감추려고 한 정황도 엿보였다.
2014년에는 후지주택의 몇몇 종업원이 선발대 형식으로 전시회장에 먼저 가서 설문용지를 모아왔으며 이마이 회장의 비서실이 이를 분류해 설문 작성법에 관한 정보를 정리하기도 했다.
이후 종업원들은 전시회에 가기 전에 비서실이 분류한 설문용지에 미리 답을 작성해 제출하기도 하는 등 여론을 왜곡하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동원됐다.
이마이 회장은 종업원들에게 회사의 IT 기기가 아닌 개인 단말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문부과학성 홈페이지에서 교과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전시회를 앞두고 종업원들에게 보낸 문서에서는 오사카 시내에서 열리는 교과서 전시회에서 다수의 설문지를 작성하면 이쿠호샤 교과서가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정보를 얻었다고 밝혔다.
또 시간제 근무를 하는 종업원의 경우 전시회장에 가는 동안의 시급을 회사가 지출할 것이라며 참가를 독려했다.
후지주택은 설문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직원들을 표창하기도 했으며 오사카부(大阪府)에 있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 교육장, 교육위원 등에게 이메일이나 팩스로 직접 의견을 표출하라고 권장했다.
아울러 이런 권유에 따라 의견을 표명한 종업원의 리스트를 사내에 배포하기도 했다.
후지주택은 직원들이 교과서 전시회에 참석하는 경우 이를 근무로 간주했다.
이쿠호샤의 중학교 교과서는 2015년 이뤄진 교과서 채택작업에서 전국 점유율이 전년보다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후지주택의 조직적 개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사건을 심리한 오사카지방재판소(지방법원) 사카이(堺)지부는 직원들을 교과서 전시회에 참가하도록 권장한 행위가 "종업원의 사상·신조에 크게 개입할 우려가 있는 것"이라며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후지주택이 사내에 혐한 문서를 배포한 혐의 역시 위법이라고 판결하고 110만엔을 재일 한국인 여성에게 배상하라고 최근 명령했다.
이마이 회장은 '이마이 미쓰오 문화도덕역사교육연구회'라는 단체의 대표를 겸직하고 있는데 이 단체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보수·우익성향의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제반 상황을 종합하면 이마이 회장은 회사에 대한 지배력 등을 토대로 자신이 신봉하는 우익 사관을 확산시키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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