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판 '분서갱유'…민주화 인사 저서가 사라졌다
홍콩보안법 시행 후 조슈아 웡 등 저서, 도서관에서 '실종'
식당 내 포스트잇도 '검열'…구의원, '광복홍콩' 구호 거꾸로 걸기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지난 1일부터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가운데 홍콩 민주화 인사들의 저서가 도서관에서 사라져 현대판 '분서갱유'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보안법 시행 후 홍콩 내 공공 도서관에서 조슈아 웡(黃之鋒) 등 홍콩의 대표적인 민주화 인사들의 저서가 모두 사라져 대출할 수 없게 됐다.
홍콩보안법은 외국 세력과 결탁,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행위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공 도서관을 관장하는 홍콩레저문화사무처는 "홍콩보안법 시행에 따라 일부 서적의 법 위반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슈아 웡은 지난 2014년 79일 동안 대규모 시위대가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벌인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의 주역이자, 지난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웡은 '나는 영웅이 아니다' 등 2권의 저서가 도서관에서 사라진 데 대해 "수년 전 발간된 내 책이 홍콩보안법으로 인해 도서관에서 사라졌다"며 "이러한 검열은 사실상 '금서'(禁書) 지정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홍콩 정부는 홍콩보안법이 극소수의 극렬분자에만 적용될 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으며, 홍콩보안법 시행 이전 사안까지 적용되는 소급 적용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웡 외에도 홍콩 야당인 공민당 탄야 찬(陳淑莊) 의원, '홍콩 자치'를 주장해 온 학자인 친완(陳雲) 등의 저서가 홍콩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찬 의원은 "정부는 홍콩보안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내가 2014년에 발간한 '음식과 정의를 위한 나의 여행'이 도서관에서 사라졌다"며 "이는 홍콩 기본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친완의 저서 '홍콩 도시국가론', '도시국가 주권론', '홍콩 방어전' 등의 책도 모두 도서관에서 사라졌다. 그는 홍콩보안법 시행 후 사회운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홍콩변호사협회 필립 다이크스 회장은 "공공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할 책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라며 "이는 정보를 추구할 수 있는 대중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콩보안법 시행 후 홍콩 내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콩 경찰은 식당 벽에 손님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써서 붙인 포스트잇도 홍콩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우케이완 지역의 한 식당 주인에 따르면 최근 경찰 4명이 찾아와 "식당 내 포스트잇 내용이 홍콩보안법 위반이라는 신고를 받고 왔다"며 "추가 신고가 들어오면 법 집행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시위대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해 이른바 '노란 식당'으로 불렸던 많은 식당이 이러한 포스트잇들을 제거했다. 홍콩에서 노란색은 시위대를 상징하는 색이다.
홍콩 내 '노란 식당'을 소개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앱스토어 등에서 사라졌다.
홍콩 정부는 지난해 홍콩 시위 때부터 시위대가 자주 외쳐온 '광복홍콩 시대혁명'이 국가 분열을 주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법을 어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틴 지역의 구의원인 레티샤 웡(黃文萱)은 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사무실에 '광복홍콩 시대혁명' 플래카드를 뒤집어서 걸어놓기도 했다.
이에 전날 경찰 11명이 그의 사무실에 찾아와 플래카드 철거를 요구하면서 이를 거부하면 홍콩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돼 기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웡은 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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