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보안법 서슬에도 침묵 거부한 홍콩인들 '저항의 함성'

입력 2020-07-01 21:18
수정 2020-07-01 21:28
[르포] 홍콩보안법 서슬에도 침묵 거부한 홍콩인들 '저항의 함성'

수천 명, 도심서 격렬한 시위 벌이며 반정부 구호 외쳐

시위대, 경찰에 욕하고 조롱…"홍콩 시위 지지해준 한국 사람들 고마워"

경찰, 180여 명 체포하며 강경 대응…시위대에 물대포·최루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본격 시행 첫날인 1일 홍콩인은 침묵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1시가 넘어서자 홍콩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코즈웨이베이 지역에는 홍콩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서 불어나는가 싶더니 인파는 어느새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5대 요구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 "폭도는 없고 폭정만 있다", "더러운 경찰"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 송환법 공식 철회 ▲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던 도중 두 손을 들어 손뼉을 치면서 함성을 질렀다.

시위에 참여한 60대 남성에게 그 의미를 물으니 "우리 자신에 대한 격려의 박수"라고 답했다.

이 남성은 "우리는 오늘 여기 '자유'와 '인권'을 외치기 위해 나왔다"며 "홍콩보안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리로 나온 우리 자신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기 위해 치는 손뼉"라고 설명했다.



일부 시위대는 우산을 쓰고 시위를 벌였다.

이는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79일 동안 벌인 대규모 도심 시위 '우산 혁명'을 기리기 위한 상징적 행동이다. 우산 혁명은 당시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탄 등을 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위대의 우산은 또한 폐쇄회로(CC)TV 등에 얼굴이 찍혀 나중에 시위 참여 증거로 쓰이는 것을 막고자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도 있다.

우산을 쓴 시위대는 두 팔을 번쩍 들고 한쪽 손은 손가락 5개, 다른 손은 손가락 1개를 펼쳐 보였다. 한쪽 손의 손가락 5개는 시위대의 5대 요구, 다른 손의 손가락 1개는 홍콩보안법 반대를 상징한다.



갑자기 시위대가 뛰기 시작했다. 덩달아 한참을 뛰다가 멈춰 섰다.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 때문이었다.

이날 시위는 '게릴라식'으로 진행됐다. 수십 명이 수백 명으로 불어나면 경찰은 갑작스럽게 달려들어 시위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는 곧바로 흩어지지만, 다소 떨어진 곳에서 다시 모여 또다시 시위를 벌인다.

홍콩 시위대는 흐르는 물처럼 경찰의 진압을 유연하게 피한다고 해서 이러한 시위를 '유수(流水) 시위'라고 부른다.



하이산플레이스 쇼핑몰 앞 시위대를 취재하는데 갑작스레 시위 진압 경찰 여러 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10대로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을 체포했다.

옆에 있던 시민에게 물어보니 아마 '홍콩 독립' 깃발을 들고 있다가 체포된 것 같다고 했다.

홍콩보안법 시행 취지를 상기시키려는 듯 홍콩 경찰은 이날 '홍콩 독립'이라고 적힌 깃발이나 구호 등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첫 번째 사례는 코즈웨이베이 지역에서 '홍콩 독립'이라고 적힌 깃발을 소지하고 있던 한 남성이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독립·전복 등의 의도를 갖고 깃발을 펼치거나, 구호를 외치는 행위는 홍콩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깃발을 들기도 했다.



시위대는 경찰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시위 진압 경찰 바로 앞은 아니더라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경찰에 대해 욕을 퍼붓고 조롱하는 말을 내뱉었다.

코즈웨이베이 지역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경찰의 머리 위로 물벼락이 떨어졌다. 알고 보니 옆 건물 6층 옥상에 있던 시민이 경찰을 향해 물을 퍼부은 것이었다.

이에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이 시민의 행동을 칭찬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시위에 참여한 한 20대 여성은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경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됐다"며 "경찰은 이제 누구라도 타깃으로 삼을 수 있게 됐고, 누구라도 체포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이날 홍콩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지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펼쳤다.

코즈웨이베이 소고 백화점 인근에 선전 부스를 만들고 장당 20홍콩달러(약 3천원)의 '모금 복권'을 판매했다. 시민들은 끊임없이 부스로 몰려들어 모금 복권을 사면서 격려의 말을 건넸다.

선전 활동을 하던 민주당 소속 구의원 라이포콰이(29)는 "중국 중앙정부는 우리에게 '입 닥치고 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여기에 나왔다"며 "홍콩인의 저항 의지는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으로 접어들면서 시위는 격렬해졌고, 경찰의 대응도 강경해졌다.

시위대는 도로 곳곳에 경찰의 진입을 막기 위한 벽돌을 쌓았고, 친중 재벌로 비난받는 맥심 그룹이 운영하는 스타벅스 점포 등의 유리창을 박살 냈다.

홍콩 경찰에 따르면 시위대를 체포하던 한 경찰이 시위자가 휘두른 흉기에 팔을 찔리기도 했다.

경찰은 이에 맞서 코즈웨이베이 지역에 물대포를 배치했고, 최루탄과 후추 스프레이 등도 발사했다.

이날 경찰은 180여 명을 체포했다. 이 가운데 15세 여학생을 비롯한 7명은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야당 의원인 레이먼드 찬(陳志全), 탐탁치(譚得志) 등도 있었다.



시위에 참여한 토머스(55) 씨는 중국 중앙정부가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홍콩보안법을 강행하면서 전 세계 국가와 시민이 중국에 등을 돌리도록 만들고 있다"며 "홍콩은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 세계에서 '친구'를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 시위를 지지해준 한국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나타냈다.

그는 "영화 '택시운전사', '변호인', '1987' 등을 통해 한국의 민주화 투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며 "홍콩 시위를 지지해준 한국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지지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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