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U 보험조사파일] 실명 행세로 5억수령…8년만에 철창서 '눈물'
※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인원은 9만3천명, 적발 금액은 8천800억원입니다. 전체 보험사기는 이보다 몇배 규모로 각 가정이 매년 수십만원씩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하는 실정입니다. 주요 보험사는 갈수록 용의주도해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고자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SIU 보험조사 파일]은 SIU가 현장에서 파헤친 보험사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작년 10월 청주지법은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45)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09년 교통사고로 오른쪽 눈 시력이 일부 저하되자 병원에서 양 눈이 거의 실명한 것처럼 행세해 영구후유장애진단을 받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2011년 한 대형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약 5억원을 타냈다.
그러나 무려 8년이 흐른 후 A씨가 가짜 시각장애인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보험사 SIU는 사기 정황을 파악한 후 사건을 수사당국에 넘겼다.
재판부는 사기 금액이 크고 고의성이 강하다며 A씨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판결만 보면 A씨는 파렴치한 사기범일 뿐이지만 사건을 파헤친 보험사 SIU 조사원에 따르면 A씨 본인도 보험사기에 가담한 탓에 큰 고초를 겪었다.
이번 사건은 A씨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보험설계사 출신의 고모 B씨가 함께 저질렀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두 사람은 서로 짜고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면 의사가 이를 검증할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용, 2011년 3월 XX대학병원에서 영구후유장애진단을 받아내" 석달 후 보험금을 탔다.
사기로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A씨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공범인 고모 B씨는 그해 11월에 A씨를 양자로 입적했다.
A씨는 경찰·SIU 조사에서 자신을 입적한 고모가 보험금을 다 가로챘으며, 자신과 아내를 이혼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수입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던 A씨는 장애인 등급으로 각종 복지시설을 전전했다고 한다.
이들의 보험사기가 드러난 건 "고모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공공기관을 통해 풀어달라"는 A씨의 하소연을 들은 복지시설장이 외부에 알리면서다.
복지시설장은 A씨가 시력을 거의 상실한 장애인으로 등록됐으면서도 운동, TV 시청, 공연 관람 등 일상 생활에 큰 무리가 없는 모습을 보고 A씨의 이야기가 상당부분 사실일 것으로 판단해 외부에 알렸고, 결국 보험사에까지 제보가 전달됐다.
사건을 추적한 보험사 SIU 조사원은 "이번 사기는 보험설계사 출신의 고모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작 A씨는 가족을 잃고 불우한 신세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고모 B씨의 자산에 압류를 신청해 지급된 보험금의 20%에 해당하는 1억원가량을 회수할 수 있었다.
작년 3월 구속된 A씨와 달리 B씨는 90세에 가까운 고령이라는 점이 참작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정에서 A씨는 범죄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보험사 관계자는 27일 연합뉴스에 "보험사기에 성공한 듯 보였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가족이 해체되고 법의 심판까지 받게 된 사례"라고 말했다.
tr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