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1년]③반도체 공급망 '이상 無'…국산화 성과도

입력 2020-06-25 07:01
[일본 수출규제 1년]③반도체 공급망 '이상 無'…국산화 성과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수출규제로 다변화 '담금질'

반도체 소재 업체 잇단 생산량 확대·개발 성공

불확실성 '여전'…"장기적인 정부 지원 필요"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작년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3개 품목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반도체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산 의존도가 낮게는 44%, 높게는 94%에 달하는 반도체 소재의 조달 차질은 '날벼락'이었다.

하지만 수출 규제 이후 1년이 가까워져 온 지금 반도체 업계는 당시의 위기가 전화위복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공급망 안정화의 핵심 조건인 거래처 다변화가 이뤄졌으며, 일부 소재에서는 국산 제품 비중이 일본산을 역전하는 성과도 내고 있어서다.

지난달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결정을 내리면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업계는 보다 안정적인 속도로 다변화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 수출규제가 다변화 촉진…반도체 '전화위복'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연내 SK머티리얼즈[036490]가 생산하는 불화수소(기체)에 대한 테스트를 마치고 공정에 투입할 전망이다.

작년 10월 국산 액체 불화수소를 투입한 데 이어 상대적으로 기술 난도가 높은 기체 불화수소까지 국산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화한 3개 품목 가운데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정확히 국내 반도체 산업을 겨냥했다.

당시 한국무역협회 기준 불화수소 수입은 일본산이 44%를 차지했고,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산이 92%에 달했다.

이중 불화수소는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액체의 경우 일본 스텔라화학과 모리타화학, 사용량이 적은 기체의 경우 일본 쇼와덴코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다.

일본 수출 규제는 갑작스러웠지만, 불화수소 재고가 3∼4개월분에 불과했던 반도체 업계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었다.

두 달 뒤에는 삼성전자가, 3개월 뒤에는 SK하이닉스가 잇따라 일본산 액체 불화수소 일부를 국산, 중국산 등으로 대체했다. 소재 조달처를 변경할 때 진행하는 테스트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한 결과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다변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안주해왔으나, 이번 위기로 다변화에 나서며 오히려 공급망이 더욱 안정화됐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기체 불화수소 일부는 미국 메티슨 등 기업 제품으로 대체했고, 8월부터 불화수소 수출 허가도 드문드문 이뤄지며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기업 JSR과 벨기에 연구센터 IMEC가 합작해 설립한 포토레지스트 업체로부터 들여왔으며 수출 허가도 꾸준히 진행됐다.

이후 12월에는 일본 경제산업성이 EUV용 포토레지스트에 대해 수출심사와 승인 방식을 개발허가에서 덜 엄격한 특정포괄허가로 변경했다.

◇ 반도체 소재 국산화 '가속페달'

국내 반도체 소재 기업도 1년 만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였다. 생산능력 확대는 물론이고 제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솔브레인은 올해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조기 완공했고, 램테크놀러지[171010]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액체 불화수소 공장 증설을 진행 중이다.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는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불화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주목을 받았다.



SK머티리얼즈는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생산시설을 내년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진쎄미켐[005290] 또한 올 초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 공장 증설을 확정했다.

이 밖에도 동진쎄미켐은 EUV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 중이고, 솔브레인은 기체 불화수소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성과는 정부의 조기 인허가 승인 등 지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 공통적인 평가다.

SK머티리얼즈에 따르면 정부가 특례 적용을 통해 기술 검토 및 안전업무 진단 처리 기간을 단축해 공정 허가가 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질 수 있었다.

램테크놀러지 또한 작년 7월 말 불화수소 등 6종의 유해화학물질 영업 판매업 허가 승인을 받았고, 솔브레인은 화학물질 조기 인허가 지원을 받았다.

정부는 국내 기업 지원뿐 아니라 듀폰으로부터 EUV 포토레지스트 생산시설 투자를 유치하는 등 공급 기반도 확보했다.



◇ 불확실성 '여전'…"정부 지원 끊겨선 안 돼"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반도체 생산 차질은 사실상 전혀 없었지만, 한일 갈등이 장기화함에 따라 불확실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 재개를 요청하면서 악재가 늘었다.

특히 반도체 업계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일본의 추가 공격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 호야가 독점 생산하는 EUV용 블랭크 마스크 등 차세대 반도체 공정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미 1년째 이어지고 있는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우려도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아직 국산화 성공 사례가 없어 우회로를 통해 일본 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고, 기체 불화수소도 사실상 미국 메티슨 물량으로 대체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다변화에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EUV용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는 최소 5년은 걸릴 것"이라며 "정부가 현재까지 해온 지원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내 반도체 소재 기업 가운데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연구개발(R&D) 비용 지원, 기술 인프라 지원 등이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acui7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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