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인종주의 과거 어떡하나…독일 속죄·흔적 처리 논란
"독일 정부, 아프리카 집단학살 시인 거부·사과요구에 침묵"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독일에서 제국주의에 대해 속죄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남은 제국주의 및 인종주의 상징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후 인종차별 반대시위가 전세계로 퍼지는 가운데 제기됐다.
독일 공영방송인 도이체벨레는 22일(현지시간)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상징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파괴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독일의 제국주의 역사는 188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30여년간으로 짧은 편이다.
1884년 독일 초대 총리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주재한 베를린 서아프리카 회담에서는 14개국 대표가 모여 공식적으로 아프리카 분할을 협의했다. 독일은 카메룬과 탄자니아, 나미비아 등을 얻었다.
영토 확장의 정점에서 독일은 전 세계 제국주의 세력 중 4위였고, 독일과 해외에 당시와 관련한 많은 흔적과 상징물이 남아있다.
독일 내 여러 거리와 광장은 제국주의 시대 지도자인 칼 페터스나 아돌프 뤼데리츠, 구스타프 나흐티갈의 이름을 따서 명명돼 있다.
독일 동아프리카 캠페인의 지휘관이었던 폴 폰 레토포벡 장군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군부대나 학교명에 그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독일이 이런 제국주의적 과거와 어떻게 타협할지는 대답하기 어렵다고 도이체벨레는 지적했다.
동상 및 거리명과 함께 박물관의 강탈한 예술품 등을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독일이 공식적으로 남서 아프리카의 헤레로나 나마 대학살, 동아프리카의 마지마지 반란, 고의적 기근 등 수천 명의 희생을 불러온 제국주의적 범죄에 대해 사죄할 지다. 독일이 배상금을 지불할지도 중요한 문제다.
이런 모든 풀리지 않은 문제는 독일의 제국주의적 과거를 그늘지게 하고 있다.
제국주의 지도자들 이름이 붙은 거리명을 바꿀지도 논란이다.
베를린 북쪽 아프리카 쿼터 지역에서 거리 2곳과 광장 1곳을 독일 제국주의에 항거한 이들의 이름으로 바꿔 명명하기로 한 것과 관련, 일부 주민들은 주소 명을 바꿔야 하는 불편과 비용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독일 20개 도시에서 활동 중인 시민단체 '포스트 제국주의'는 거리 이름을 다 바꿔야 하는 것은 물론, 제국주의에 항거한 인사들을 기념하고,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로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반제국주의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을 저질렀다는 여러 역사학자의 지적에도 독일 정부는 공식적인 시인을 거부해왔다.
이달 초 하게 게인고브 나미비아 대통령은 수도 빈트후크에서 "독일은 결국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독일 정부는 배상금 지급 가능성도 일축했다. 독일 정당들은 제국주의적 과거에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극우성향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예외다.
요한 힌리히 클라우센 독일 기독교회 문화위원은 "독일의 제국주의적 과거를 직면할 때가 됐다"면서 "독일 내에서 제국주의적 과거에 눈을 뜨는 이들이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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