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민당도 일국양제 거부…반중정서에 개혁안 마련
"중화민국 인정하라"…'하나의 중국 원칙'도 '과거 공헌'으로 표현 변화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 본토와의 관계를 중시해 '친중파'로 여겨지기도 하는 대만의 중국국민당(국민당)마저 중국이 요구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방안 통일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당론을 모았다.
대만에서 날로 거세지는 반중국 정서 속에서 국민당마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중국 본토와 '정치적 거리 두기'에 나선 것이다.
21일 중앙통신사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국민당 개혁위원회는 수개월 간 논의를 거쳐 지난 19일 당 개혁 건의안을 발표했다.
개혁안은 향후 전당대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개혁위는 건의안에서 중국 본토에 맞선 대만의 주권 수호를 전면에 내세웠다.
개혁위는 "일국양제를 거부한다"며 "'바다 건너편'(중국 본토)은 중화민국이 하나의 주권 국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과 안정적 관계 유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국민당은 그간 중국이 주장하는 일국양제를 부정하는 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민당 후보이던 한궈위(韓國瑜)가 지난 대선 정국 때 뒤늦게 개인적으로 일국양제 거부 선언을 하기도 했지만 '친중 낙인'을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민당은 이번 개혁안에서 양안 관계의 기본 바탕으로 여겨지는 '92공식'(九二共識·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각자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합의)은 기본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과거 92공식의 공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과거'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대만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담은 92공식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진 상황을 반영해 향후 정치적 운신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국민당은 또 이번 개혁안에서 홍콩 시위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폭로한 의사 리원량(李文亮)에 관한 중국의 대처 방식이 대만인의 중국에 대한 마음을 멀어지게 했다고 지적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체로 이번 국민당의 개혁안은 대만의 여론 지형 변화에 따라 중국과의 거리 두기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당내 일각의 92공식 폐기 선언과 같은 급진적 변화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국민당의 정식 당명은 '중국국민당'이다. 이름에서부터 태생인 '중국'을 명시한 이 정당의 변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뿌리가 중국인 국민당은 중국의 국부인 쑨원(孫文·1866∼1925)이 세웠지만 1925년 그가 숨진 뒤 장제스(蔣介石·1887∼1975)가 오랫동안 이끌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와 지지 세력은 대만 섬으로 패퇴했다.
오랜 국민당의 독재 이후 민주화가 이뤄지고 나서 대만에서는 리덩후이(국민당)·천수이볜(민진당)·마잉주(국민당)·차이잉원(민진당) 총통이 차례로 집권하면서 민진당과 국민당이 일정한 균형을 이뤄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계기로 대만에서 반중 정서가 크게 확산하면서 대만의 정치적 지형은 독립 지향의 민진당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간 대만에서 민진당은 대만 토박이인 '본성인'(本省人)과 젊은 층의 지지를 주로 받는 반면 국민당은 장제스를 따라 대만에 온 '외성인'(外省人)과 중·장년층의 지지를 주로 받았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중국과 대만의 분리 상황이 지속할수록 국민당 지지층이 점차 소멸해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어서 국민당은 향후 생존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1월 대선 참패 이후 국민당의 젊은 당원들 사이에서는 아예 92공식을 내팽개쳐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다.
국민당 청년위원회 주임인 쑤징옌(蕭敬嚴)은 대선 패배 직후 공개적으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한 태도가 국민당 패배의 주된 이유였다"며 "이미 27년이 지난 92공식은 더는 시대에 맞을 수 없게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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