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코미디언의 대통령 아들 조롱발언이 불러온 파장

입력 2020-06-21 07:26
멕시코 코미디언의 대통령 아들 조롱발언이 불러온 파장

인종차별 논란 속에 TV 쇼 중단…국가차별방지위원장 사퇴까지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대통령의 어린 아들을 조롱한 코미디언의 발언이 TV 프로그램 중단부터 국가기관 수장 사임으로까지 이어지며 논란을 키우고 있다.

20일(현지시간) 현지 일간 레포르마 등에 따르면 케이블 채널 HBO 라틴 아메리카는 멕시코 코미디언 추멜 토레스가 이끄는 TV 쇼의 방송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밝혔다.

HBO 측은 "토레스의 발언과 관련한 최근의 의혹 제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튜브 스타이기도 한 토레스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 16일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의 부인인 베아트리스 구티에레스 여사가 트윗을 올리면서부터다.

구티에레스 여사는 토레스가 국가차별방지위원회(CONAPRED)의 인종·계급 차별 관련 포럼에 패널로 초청된 사실을 문제 삼으며 "이 사람이 내 미성년자 아들을 공격한 것과 관련해 여전히 공개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썼다.

영부인은 10개월 전 토레스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의 캡처 이미지를 함께 올렸는데, 이 영상에서 토레스는 대통령 내외의 13살 아들을 '초코 플란'이라고 지칭했다.



초코 플란은 짙은 색의 초코케이크와 연한 색의 커스터드 푸딩이 층을 이룬 디저트로, 머리카락이나 피부 색깔을 가리키는 인종차별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멕시코 언론들은 전했다.

구티에레스 여사의 발언 이후 과거 토레스의 인종 차별적이거나 계급 차별적인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고, 결국 국가차별방지위원회는 17일로 예정됐던 온라인 포럼을 취소했다.

토레스의 발언이 뒤늦게 불러온 논란은 2003년 설립된 국가차별방지위원회마저 뒤흔들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17일 정례 기자회견 자리에서 관련 논란을 언급하며 자신은 위원회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튿날 회견에서도 "멕시코 국민이 이 기관의 존재를 알았을까? 이전 정권에서 온갖 조직을 설립했는데 사람들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며 "당연히 인종주의, 차별과 싸워야 하지만 정의에 대한 요구가 있을 때마다 기관을 만들 순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위원회를 해체하고 행정부로 기능을 통합할 의사도 내비쳤다.

기관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을 대통령이 연이어 쏟아내자 위원회를 이끌던 모니카 막시세 위원장이 19일 사의를 밝히는 데까지 이르렀다.

일련의 사태를 둘러싸고 멕시코에선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그리고 위원회에 대한 대통령의 공격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 언론인 세르히오 사르미엔토는 일간 레포르마 칼럼에서 "대통령이 이 기관을 몰랐을 것이라곤 믿기 힘들다"며 "자신의 아들에게 비하적인 표현을 쓴 코미디언을 패널로 초청한 위원회에 벌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 보다 말이 된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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