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바이러스, 인간 유전 정보 훔쳐 하이브리드 만든다"
인간-바이러스 하이브리드 유전자, 새로운 단백질 생성 지시
미 마운틴 시나이 의대 연구진, 저널 '셀'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RNA 바이러스는 스스로 유전자 정보를 전사(轉寫·옮기어 베낌)해 단백질을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일명 '모자 낚아채기'(cap-snatching)라는 수법으로 숙주 세포의 DNA 전사 과정에 몰래 편승한다.
쉽게 말해 숙주 세포의 유전자 정보를 전달하는 mRNA(전령RNA)의 한쪽 말단을 자르고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붙이는 것이다.
그러면 숙주 세포의 유전자(DNA 염기 서열)와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합쳐진 '하이브리드 메시지'(hybrid host-virus sequences)가 전사된다.
바이러스가 이 과정에서 숙주 세포의 유전자 정보를 가로채,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단백질을 다량 생성한다는 걸 미국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이 단백질은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 변경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바이러스의 유전자 정보와 함께 전사된 숙주 세포의 유전자 정보도 단백질 합성 정보로 번역된다는 게 새로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이어붙인 자기 유전 정보만 단백질로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마운틴 시나이 의대 과학자들은 19일 저널 '셀'(Cell) 인터넷판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영국 글래스고대의 바이러스 연구센터 과학자들도 이 연구에 참여했다.
연구팀이 이번에 관찰한 건 '분절형 음성 가닥 RNA 바이러스'(segmented negative-strand RNA viruses)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일명 sNSVs 바이러스다.
인간은 물론 가축과 식물 등에 널리 퍼진 심각한 병원체인데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라사열(Lassa fever) 바이러스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새로 발견한 단백질에 UFO(Upstream Frankenstein Open reading frame)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자 염기서열에 자신의 그것을 이어붙임으로써 이 단백질의 생성 정보가 부호화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 단백질은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를 완전히 바꿀 수도 있어, 백신 개발 등에 활용할 가치가 높다고 과학자들은 기대한다.
실제로 인플루엔자 말고 다른 여러 바이러스에도 UFO 생성 정보를 가진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sNSVs의 하이브리드 유전자 생성은 면역계에서도 관찰되는데 과학자들은 그 독성 조절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했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마운틴 시나이 의대의 이반 마라찌 미생물학 부교수는 "병원체가 숙주 세포의 벽을 넘어서 감염하는 능력은, 병원체 유래 단백질이 얼마나 잘 발현하느냐에 달렸다"라면서 "그래서 병원체가 어떤 단백질 합성 정보를 가졌고, 그 단백질이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방법으로 병원체의 독성을 키우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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