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계속된 中·印 국경분쟁…3천500㎞ 곳곳서 충돌

입력 2020-06-17 14:50
수정 2020-06-17 17:44
수십년 계속된 中·印 국경분쟁…3천500㎞ 곳곳서 충돌

1962년 전쟁까지 치러…英 '맥마흔 라인'이 갈등 불씨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핵보유국이자 세계 인구 1, 2위인 중국과 인도의 국경 충돌로 45년 만에 군인 사망자가 나오자 양국의 뿌리 깊은 분쟁사가 관심을 끈다.



두 나라는 신생국이었던 1950년대 초만 하더라도 관계가 우호적이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와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총리가 뉴델리와 베이징을 교대로 방문할 정도였다.

인도는 중국 공산정부를 다른 나라보다 앞서 인정했고 티베트 합병도 사실상 묵인했다.

하지만 1956년 중국이 티베트와 신장(新疆)을 연결하기 위해 악사이친을 통과하는 도로를 건설하면서 양국 관계에는 금이 갔다. 카슈미르와 라다크 동쪽에 자리 잡은 악사이친은 인도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지역이었다.

티베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1959년 인도로 피신한 점도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후 여러 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했고 중국과 인도는 1962년 라다크 지역 등에서 전쟁을 벌였다.

인도는 한달가량 이어진 전쟁에서 치욕적으로 패했다. 인도에서는 3천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4천명이 포로로 잡혔던 반면 중국 측은 사상자는 거의 없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중국은 악사이친을 완전히 손에 넣었고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다.

양측은 전쟁 후 정확한 국경을 획정하지 못했고 실질통제선(LAC)을 설정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번에 국경 충돌이 발생한 곳도 악사이친 서쪽이자 라다크 동쪽의 LAC 인근 갈완 계곡이었다.



양국은 1967년에도 네팔과 부탄 사이에 있는 인도 시킴주에서 충돌했다.

인도는 당시 충돌로 80명의 군인이 사망했고 중국 측에서도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1975년에는 인도군 4명이 동북부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 중국군의 매복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이번 사태까지 양국 사이에서는 45년간 사망자가 발생한 유혈 충돌은 없었다.

인도 육군은 이번 라다크 국경 충돌로 20명의 자국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양측은 그간 확전을 피하기 위해 총기를 동원하지 않고 맨손 격투나 투석 등으로 맞섰는데 이번엔 워낙 충돌이 격렬해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같은 두 나라 간의 주요 국경분쟁은 1914년 인도 심라에서 획정된 '맥마흔 라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맥마흔 라인은 서쪽 부탄에서 동쪽 브라마푸트라 강까지 890㎞ 구간을 말한다. 맥마흔 라인에 따라 티베트 남부 지역은 영국령 인도 영토가 됐다.

하지만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심라 협정이 영국의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불평등 조약'이라며 파기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티베트 남쪽 아루나찰프라데시 9만㎢를 '짱난'(藏南·남티베트)이라고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 이곳을 실효 지배한 인도 측과 대립해왔다.

중국은 아루나찰프라데시 외에 히말라야 도카라(중국명 둥랑<洞朗>·부탄명 도클람) 지역에도 도로와 헬기 이착륙장을 건설하고 대포 등 군사시설을 증강 배치해 인도가 반발하기도 했다.

양국 군은 중국, 인도, 부탄 국경선이 만나는 이 도카라 지역에서 2017년 73일간 대치하며 일촉즉발의 충돌 위기도 겪었다.

두 나라는 서쪽 카슈미르부터 북동쪽 구석에 자리 잡은 아루나찰프라데시까지 3천500㎞에 달하는 국경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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