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없고 갈 길 먼 데…"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 공론화 난항
경주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보름 내 숙의 착수해야"
첫발 뗀 중장기 관리방안 공론화도 '첩첩산중'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 수립을 위한 정부의 공론화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공론화 작업은 두 갈래다. 경북 경주시 월성 원자력발전소 내 건식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을 위한 논의와 사용후핵연료를 중장기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에 대한 공론화가 그것이다.
발등의 불은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 여부를 정하는 것이다. 기존 저장시설의 포화 일정을 고려하면 이달 내 숙의 과정에 착수해야 하지만, 반대 여론에 밀려 일부 지역에선 주민 설명회조차 열지 못했다.
사용후핵연료를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둘러싼 공론화는 이제 시작 단계다. 내용 자체가 방대하고 난해한 데다, 찬반 의견이 갈려 탄력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 "월성 맥스터 증설 숙의 과정, 보름 내 시작해야"
16일 정부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에 따르면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는 이달 12일 경주시 양남면사무소에서 맥스터 추가 건설을 위한 주민 설명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주민 반발로 열지 못했다. 이날 설명회는 결국 '무효' 처리됐다. 양남면은 월성원전 소재지로, 앞서 두차례 예정된 설명회도 무산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더는 주민 설명회를 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월성원전 실행기구와 양남면 대책위원회에 숙의 절차 개시 시점을 협의해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재검토위는 지난달부터 경주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인근 지역 주민 3천명을 대상으로 모집단을 이미 꾸렸고, 남은 절차는 이 중 150명의 시민참여단을 구성해 4주간 숙의 과정을 거쳐 맥스터 추가 건설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증설로 결론이 나면 실행기구→경주시→재검토위→정부 공작물축조 신고 등 단계를 거쳐 공사에 들어간다. 물론 증설 반대로 결론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꺼낸 뒤 습식저장조에서 6년간 냉각한다. 이후 원통형 콘크리트 구조물인 캐니스터, 직육면체 구조물인 맥스터 같은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열을 식힌다.
월성원전 내 캐니스터는 이미 꽉 찼고, 맥스터 역시 포화를 눈앞에 뒀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맥스터 용량 16만8천다발 가운데 95.36%가 다 쓴 핵연료로 채워졌다. 2022년 3월 즈음에는 완전히 포화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에 한수원은 월성원전 내 기존 맥스터 부지 옆에 16만8천다발을 보관할 수 있는 맥스터 7기를 더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공사 기간은 약 19개월로, 이를 역산하면 8월에는 착공해야 한다. 착공이 늦어져 다 쓴 핵연료를 보관할 곳이 없어지면 월성원전 2~4호기를 멈춰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정부와 한수원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재근 경주 YMCA 원자력아카데미 원장은 "정부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경주에 유치할 때 2016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을 경주 밖으로 반출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건식저장시설을 설치하겠다고 하니 엄청난 지역 간 갈등이 일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경주 주민과 시민단체는 맥스터 증설에 반대하며 천막 농성을 펼치고 있다. 게다가 원전 소재지가 아닌 곳에서까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울산 북구 주민들은 최근 맥스터 증설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해 5만여명 중 94.8%가 반대했다. 원전 소재지는 아니지만 월성 원전 반경 20㎞ 이내에 울산 북구 주민 21만8천명, 반경 30㎞ 이내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울산시민 102만명이 거주한다. 이에 자체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번 투표는 민간주도로 이뤄져 법적 효력은 없지만,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아무리 늦어도 이달 내 숙의 절차를 시작해야 8월 중 맥스터 착공이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주민 갈등이 확산하는 만큼, 의견이 모일 때까지 좀 더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중장기 관리 방안 공론화도 '첩첩산중'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 방안 마련을 위한 공론화도 갈 길이 멀기는 마찬가지다. 재검토위는 지난달 549명의 시민참여단을 꾸려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논의의 핵심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어떤 방식으로 선정할지다.
국내에는 임시저장시설만 있을 뿐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은 없다. 국민 안전과 환경보호를 위해선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분할 시설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핀란드도 2002년 올킬루오토를 고준위 방폐물 최종 처분시설 부지로 정해 건설 중이다.
재검토위가 지난 12일 주최한 전문가 참여 TV 토론회에서 송종순 조선대 교수는 "땅속 깊이 영구처분시설을 만들려면 부지 결정과 건설허가, 최종 건설까지 최소 36년에서 40년이 걸린다"면서 "그사이 임시저장시설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들이 다 들어찰 것이고, 임시저장시설은 무한정 늘릴 수 없으니 중간저장시설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합의"라고 설명했다.
쟁점은 여러 가지다. 영구처분시설과 중간저장시설을 한곳에 몰아서 지을지, 분산할지,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부지를 선정할지 등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도 나온다. 김유홍 지질자원연구원 단장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원칙이 바뀌면 국민이 신뢰를 못 한다"면서 "영구처분시설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사회적 수용성이며, 그에 앞서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핀란드가 1983년 국회의원들과 함께 만든 '정치적 인가'(DiP, Decision in Principle)를 지금껏 준수하는 것처럼, 우리도 한번 만들면 40년 이상 지킬 수 있는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검토위는 조만간 2차 TV토론을 연다.
fusion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