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사태 속 군 '투톱'의 반란…1·2차 항명파동에 트럼프 흔들

입력 2020-06-12 09:06
시위사태 속 군 '투톱'의 반란…1·2차 항명파동에 트럼프 흔들

'재선행보에 군 끌어들이지 말라'…에스퍼 반기 들고 밀리 공개반성문

NYT "베트남전 이래 민·군 갈등 최고조"…장기화시 안보 악영향 우려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미 시위사태 국면에서 군 수뇌부가 들고 일어났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시위진압을 위한 군 동원 방침에 반기를 든데 이어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11일(현지시간) 엄청난 논란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성경 이벤트'에 동행한데 대해 공개 반성문을 쓴 것이다. 이른바 군 최고 수뇌부의 1,2차 항명파동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군 사이의 충돌이 최고조로 치닫는 양상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누적돼온 군의 불만이 '투톱'의 반란으로 표면화된 것으로,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일 오전 백악관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을 위한 연방군 1만명 투입론을 제기했고, 에스퍼 국방장관과 밀리 합참의장은 이에 제동을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강행, 군 동원 방침을 밝혔고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라파예트 공원 맞은편의 세인트존스 교회를 찾아 성경을 들고 서 있는 '인증샷'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최루탄 등으로 강제 해산 시켜 물의를 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일로 엄청난 역풍에 직면했으며, 수행한 에스퍼 장관과 밀리 합참의장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쇼에 이용당했다'며 군 조직 안팎에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3일 국방 수장인 에스퍼 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 트럼프 대통령의 군 동원 방침에 반기를 들며 '항명'했다. 같은 날 오후 이뤄진 전직 국방수장 제임스 매티스 장관의 트럼프 대통령 공개 비판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첫 흑인 합참의장 및 국무장관 타이틀을 가진 콜린 파월 전 장관이 7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반대하며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공개지지하는 등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했고, 군 내부의 동요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이런 와중에 밀리 합참의장이 이날 미리 녹화한 국방대학교 졸업식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행에 들러리를 선 것에 대해 '참회'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 상실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타격이 아닐 수 없다.

CNN방송은 "미국의 최고위 장군이 그것도 미래의 군 지도자들 앞에서 최고사령관을 수행한 데 대해 사과한 희대의 순간"이라고 촌평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내 대표적 우군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이날 밀리 합참의장의 발언에 지지 입장을 공개 표명하는 등 여권내 기류도 심상치 않게 흘러가면서 파문이 확산하는 기류다.

더욱이 에스퍼 장관과 밀리 합참의장이 과거 노예제를 옹호하던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을 딴 군 기지 명칭 변경에 대한 초당적 논의에 열려있다는 방침을 밝히는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검토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언지하에 거부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 군 수뇌부의 갈등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상태이다.

밀리 합참의장은 강경 시위 진압에 대해 마치 군이 승인도장을 찍어준 것처럼 비친 데 대해 지난 10일간 고뇌에 찬 상태였다고 그의 친구들이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실제 매티스 전 장관은 이번 국면에서 밀리 합참의장의 '행보'에 대해 매우 언짢아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 비판을 촉발한 하나의 동기가 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에스퍼 장관의 항명에 격분한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해임까지 고려하고 에스퍼 장관 본인도 사직서를 준비했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밀리 합참의장도 이번 일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단단히 사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과 국방부 간 최근 격돌과 관련, 이번에는 군 수뇌부가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베트남전 이래 가장 깊은 민·군 갈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보도했다.

'노(No)'를 견디지 못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너무도 잘 아는 군 수뇌부가 해임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데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시위 대응 과정에서 군을 끌어들인 것이 군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린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군이 대선용 정치행보에 끌려들어가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점에서다.

군 수뇌부의 잇단 항명은 가뜩이나 시위 대응 논란과 지지율 하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악재가 아닐 수 없어 리더십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선 양상이다. 장기화할 경우 자칫 '트럼프 리스크'가 미국의 안보에 대한 악영향으로 옮겨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텍사스 댈러스 방문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나서면서 질문을 받지 않는 등 아직 공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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