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봉쇄 풀렸지만…생계와 싸우는 이탈리아 자영업자들

입력 2020-06-12 07:07
[특파원 시선] 봉쇄 풀렸지만…생계와 싸우는 이탈리아 자영업자들

영업 재개했지만 손님 급감해 울상…자금 없어 문 못여는 상점도

약속한 정부 생계 지원금은 감감무소식…2차 확산 땐 '재앙' 우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로마의 명소 판테온 앞엔 음식점과 카페, 젤라토(아이스크림) 가게가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이 '타차도로'(Tazza D'Oro)다. 1944년 오픈해 7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다.

판테온을 찾은 우리나라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은 이 카페에 들러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를 마셔봤을 것이다.

로마 최고 인기 카페답게 이곳에서 커피 맛을 보려면 보통 20분 이상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최소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있기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판테온 앞과 마찬가지로 이 가게 앞의 인파도 사라졌다.

타차도로가 그럴진대 다른 카페는 말할 것도 없다. 시내 음식점도 한가하긴 마찬가지다. 평소 가장 붐비는 시간대에도 예약을 받아주는 곳이 많다.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그만큼 많이 줄었다는 뜻이다.





음식점과 카페, 술집 그리고 대부분의 소매 상점들은 지난달 18일 일제히 다시 영업을 정상화했다. 3월 중순 정부의 봉쇄 조처로 영업을 중단한 지 약 2개월 만이다.

하지만 많은 업주는 여전히 장사가 안돼 울상이다. 손님이 급감해 시간이 갈수록 손실만 커진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이들은 그나마 문이라도 열었으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영업을 재개할 자금이 없어 장기 휴업 중인 곳도 많다. 매출 불확실성 때문에 영업 재개를 미루는 상점도 있다고 한다.

관건은 이들의 수익을 떠받쳐온 외국인 관광객이 언제 돌아오느냐다.

이탈리아 정부가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지난 3일 서둘러 국경을 열고 유럽지역 관광객 입국을 허용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이탈리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6천160만명에 달한다. 이 나라 인구(6천36만명·2019년 기준)보다 많은 관광객이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셈이다. 이 가운데 89%는 유럽에서 온다.

전체 소비액은 미화 493억달러(약 58조9천36억원)로, 1인당 800달러(약 95만원)꼴이다.

관광객 방문 수 기준으로 1∼3위를 차지하는 로마와 베네치아, 밀라노 등의 상당수 음식점과 상점은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는 매출 비중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전체 상점 매출의 3분의 1이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나온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당분간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활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연중 최대 성수기인 여름 휴가철을 맞아 관광 수요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여전해 기대만큼 동력이 붙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바이러스 2차 파동에 대한 공포감도 크다. 현 상황에서 영업 중단과 같은 고강도 봉쇄 조처가 되풀이되면 재기 불능의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현지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 이탈리아 경제 구조를 고려할 때 경제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로마 중심가의 많은 상점은 '정부 지원 없이는 영업을 재개할 수 없다'는 문구가 적힌 전단을 내붙였다. 이후 한 달이 흘렀지만 일부 상점에는 아직도 이 전단이 붙어있다.

지난 3월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에게 약속한 생계 지원금이 언제 이들의 손에 쥐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탈리아의 자영업자 비중은 2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25.1%) 다음으로 8번째로 높다.

이탈리아 정부의 봉쇄 조처는 완전히 해제됐지만, 수많은 자영업자는 여전히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생계와의 싸움에 직면해 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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