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대사 '미중 선택' 발언 파장…미 카운터파트가 직접 반박
국무부 대변인실 이어 동아태차관보 실명 언급…'민주주의 선택' 내세워 압박
방위비 등 '트럼프 리스크' 관리·한반도 긴장 고조 속 동맹긴장 요인 우려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미·중 갈등 격화 상황에서 "한국이 이제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는 이수혁 주미대사 발언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가 지난 5일(현지시간) "한국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는 입장을 밝힌 지 4일 만인 9일 이 대사의 카운터파트 격인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직접 반박에 나선 것이다.
스틸웰 차관보의 이날 언급은 중국 관련 문제를 주제로 한 싱크탱크의 '전략적 경쟁 시대의 비판적 사고' 화상 세미나에서 이 대사의 해당 발언을 거론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나,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동맹국의 카운터파트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한 셈이어서 이례적으로 보인다.
스틸웰 차관보는 앞서 국무부가 낸 입장에 대해 "상당히 잘 표현했다"면서 한국은 과거 1980년대에 민주주의를 선택했다는 점을 환기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못박았다.
또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외교적인 표현을 통해 불편함을 표출하면서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스틸웰 차관보의 이날 발언은 미·중 간 갈등에서 한국이 권위주의 정권인 중국 대신 동맹이자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미국 편에 서라'는 사실상 노골적 압박을 가한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이 대사의 관련 발언은 지난 3일 화상 특파원 간담회 모두발언에 있던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중 갈등 격화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국제적 모범 방역사례로 평가받은 코로나19 대응과 한미 정상간 통화를 통한 미국의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초청 등에 비춰 한국의 위상과 공간이 확대된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경제와 군사, 인권 등 전방위적으로 반중(反中) 전선을 확대하는 첨예한 상황에서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 한미동맹 간 긴장 내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다는 우려도 워싱턴 조야에서 나왔다.
이 대사의 발언은 한미 간 동맹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불거졌다.
한미 방위비 협상이 양국간 입장차로 표류중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등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독일 주둔 미군 수천 명을 오는 9월까지 감축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는 미 언론 보도가 최근 나오면서 한국에 미칠 영향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독미군 감축 결정 과정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알리지도 않았다는 대목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트럼프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국면 전환 내지 국내용 성과 창출이 급한 상황에 내몰리면 불쑥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들 위험성도 일각에서는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그만큼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소통·조율 등을 통해 '트럼프 리스크'가 불거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더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주년과 6·15 남북 공동선언 20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남북간 연락채널을 끊는 등 남북관계 단절까지 언급, '싱가포르 이전'으로 회귀하며 한반도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한미간 긴밀한 대북 공조도 요구되고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 측은 이날 이 대사의 발언 논란이 확산하자 페이스북에 "준비된 원고였다"며 즉흥 발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오해가 없게 하겠다는 취지에서 전후 맥락 발언을 함께 올렸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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