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휩쓴 반중정서에 한궈위 열풍 완전히 꺼져

입력 2020-06-06 18:33
수정 2020-06-09 09:01
대만 휩쓴 반중정서에 한궈위 열풍 완전히 꺼져

'중국 변수'에 대선 대패하고 시장서도 쫓겨나

탄핵으로 정치 치명상…집권 민진당에 더 힘 실릴 듯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대만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극적인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던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이 6일 시민들에게 탄핵을 당했다.

대만 사상 최초로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쫓겨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면서 그는 지난 1월 대선 패배에 이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은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한때 대만 정계를 뜨겁게 달군 한궈위 열풍인 '한류'(韓流)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이다.

한궈위는 대만 정치권에서 이단아 같은 독특한 스타일의 정치인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대만인 사이에 인지도가 거의 없었는데 2018년 11월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현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20년 텃밭인 가오슝 시장 선거에서 예상을 뒤집고 승리하면서 일거에 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필승 카드로 떠오른 것이다.

깊은 전략이 부재한 포퓰리즘 정치인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한궈위는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쉽고 간결한 정치적 메시지를 앞세워 기성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

가오슝 시장 선거 때 앞세운 '가오슝이 떼돈을 벌게 해 주겠다'는 대표 정치 구호는 단순·명쾌함을 선호하는 그의 정치적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소탈하고 친근한 이웃 아저씨 같은 이미지도 한 시장이 가진 강력한 무기였다.

2018년 여름 가오슝에 폭우가 내렸을 때 홀로 우산을 든 채 양복바지를 걷어 올리고 침수 현장을 다니며 주민들을 위로한 모습은 대중들에게 큰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당내 기반이 극도로 취약했지만, 한궈위는 작년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대만 최고 부호 궈타이밍(郭台銘)을 제치고 국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한궈위가 인기가 크게 떨어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을 제치고 다음 총통부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여러 대선 가상 여론조사에서 한궈위의 지지율은 차이 총통의 거의 두 배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만 대선에 영향력이 큰 '중국 변수'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작년 6월부터 본격화한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계기로 대만에서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강요하는 중국에 대한 반감이 급속히 고조됐다.



중국에 뿌리를 둔 국민당은 '친중 세력'으로 낙인찍혔고 여론 지형은 급격히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 쪽으로 기울었다.

외부 요소 외에도 한 시장의 '기행'에 가까운 언행 등 후보의 자질 문제도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경선 상대이던 궈타이밍이 탈당해 제3당 후보 지지까지 하는 자중지란 양상까지 벌어지면서 국민당 진영은 완벽하게 무너졌다.

결국 차이 총통은 1월 대선에서 역대 최대 득표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연임에 성공했고, 한궈위는 '본업'인 가오슝 시장 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가운데 유권자들이 한궈위를 탄핵한 것은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가 계속 멀어지면서 대만의 정치 지형이 '친중' 진영 정치인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 독립 지향 세력인 민진당의 정치 세력이 공고화함에 따라 인내심이 바닥에 달한 중국 정부가 무력 통일 가능성을 수시로 경고하는 가운데 대만에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중 정서가 더욱더 깊어지는 모습이다.

대만 중앙연구원이 지난 4월 1천83명을 상대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중국 정부는 대만의 친구가 아니다"라는 응답한 이의 비율은 7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향후 보궐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오랜 텃밭인 가오슝 시장 자리를 되찾는다면 가뜩이나 코로나19 저지 성공으로 지지율이 높은 차이잉원 총통의 집권 기반은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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