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코로나19의 또 다른 얼굴…재택근무 확산 도화선되나
코로나19 봉쇄령이 대규모 재택근무 실험 가능하게 해…결과는 '합격'인 듯
서비스업 사무직 중심 확산할 듯…'재택+사무실' 합친 하이브리드 모델 유력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첨단 정보기술(IT) 산업의 본산이라 할 미국 실리콘밸리에 재택근무의 바람이 거세다.
몇몇 I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재택근무의 장점을 얘기할 때까지만 해도 '업무에 큰 차질이 없나 보다' 싶었는데 21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까지 재택근무 전환을 선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홍역 속에 한때 잠시 부는 돌풍이려니 했는데 파장이 점점 확대되자 재택근무가 정말 '뉴 노멀'(새로운 정상)로 자리 잡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
재택근무, 원격근무가 활성화할 것이란 관측은 통신·IT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미 오래전 나온 구문이지만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대규모로 실험해볼 사실상 첫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19의 확산 억제를 위해 미국 지방정부들이 기업과 가게가 문을 닫게 하는 고강도 처방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간 도상 훈련에 그쳤던 재택근무가 처음 실전 투입된 셈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5∼10년 내 페이스북 직원의 50%가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불러온 갑작스러운 규제 속에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페이스북의 역량이 원격근무 모델에 대한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해봤더니 할 만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얘기다.
이런 고백은 IT 기업 CEO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CEO 제임스 고먼은 지난달 실적 발표를 하며 "만약 당신이 석 달 전에 우리 직원의 90%가 집에서 일하면서도 회사가 잘 돌아갈 거라고 말했다면 나는 '그건 내가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시험'이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런 시도를 했다가 잘못됐을 경우의 부정적인 여파가 너무 막대하다고 말했다.
억지로 내몰려 하게 된 실험이지만 성과는 합격점인 듯하다.
저커버그 CEO는 "일상적인 업무의 생산성을 놓고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이스북뿐 아니다. 소셜미디어 트위터는 이보다 앞서 지난 12일 직무 성격이나 여건상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원이 영구히 재택근무를 하기 원할 경우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트위터의 잭 도시 CEO가 창업한 모바일 결제 업체 스퀘어도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무기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쇼피파이의 토비 루트케 CEO는 "사무실 중심주의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내년까지 사무실을 폐쇄하고 이후에도 대부분 직원이 영구적으로 원격근무를 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캐나다의 IT 기업 오픈텍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120개에 달하는 사무실 중 절반 이상을 없애겠다고 했고, IT 영토 밖으로 시선을 옮기면 미국 뉴욕의 미디어 업체 스키프가 7월 리스 기간이 만료하면 뉴욕 본사의 임대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재택근무의 확산 바람이 얼마나 세력권을 넓혀갈지 궁금해지는 일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
안타깝게도 기자가 이를 점칠 수는 없지만 상식 수준에서 윤곽을 그려볼 수는 있다. 사무직 중심의 서비스 업체가 가장 유력하고, 업무에 차질이 없다면 더 확산하리란 것이다.
당장 페이스북, 트위터와 똑같은 IT 기업 테두리에 들어오는 애플이나 테슬라만 봐도 기류가 다르다.
아이폰·아이패드·에어팟 등 하드웨어 제품이 주력 상품인 애플은 최근 일부 직원들에게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요청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보도했다.
핵심적이면서 기밀인 제품 관련 업무를 재개하겠다는 신호로 미 언론들은 풀이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공장 문을 며칠이라도 빨리 열기 위해 카운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저커버그나 도시 같은 CEO들이 재택근무에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당장 비용 절감을 떠올릴 수 있다. 직원들이 사무실에 덜 나오면 그만큼 사무실 공간을 줄일 수 있다.
양질의 식사를 구내식당에서 하루 종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한 구글에서는 재택근무 전환 뒤 직원들이 회사 밥을 그리워한다거나, 못 누리게 된 이런 혜택을 급여로 보전해달라고 요구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저커버그는 재택근무를 선택한 직원이 집을 옮기면 해당 지역의 세금·물가 등을 고려해 급여를 깎겠다고도 말했다.
다만 그는 재택근무 전환으로 회사가 전체적으로 큰 비용 절감 효과를 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직원들의 인구학적·이념적 다양성이 확대될 것이란 점을 장점으로 들었다.
미국 기업 CEO들이 자주 언급하는 '다양성'의 쓸모는 우리에게 너무 추상적이고 경영 효율성과도 무관한 수사처럼 보이지만 저커버그의 설명은 이 다양성의 효용을 잘 보여준다.
어떤 사안에 대해 전 세계 인구의 몇 퍼센트가 어떻게 반응하고 생각할지를 회사가 잘못 판단하는 실수를 피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저커버그는 또 재택근무 전환을 두고 "이는 우리가 어떻게 더 일을 잘하고 우리가 필요한 사람을 끌어모으느냐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역시 '실리콘밸리에선 전문대(칼리지)만 나와도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면 기업들이 다 데려간다'는 지역 분위기를 이해하면 단순한 수사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나가는 IT 기업'과 '고액 연봉의 직원'이 악순환을 일으키며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과 물가를 끌어올리자 실력보다는 '이 지역에 거주하며 출근할 수 있느냐'가 채용의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그런 IT 기업들 입장에선 전 세계의 유능한 인재를 데려다 쓸 기회의 창이 대폭 넓어지는 것이다. 이들 직원에게는 실리콘밸리 직원보다 월급을 더 적게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직원들 입장에선 더 치열해질 경쟁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뉴욕·샌프란시스코 등) 해안가 도시에 사는 일부 직원들은 똑같은 급여를 받으며 생활비가 더 싼 곳으로 옮겨갈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이는 동시에 이들이 다른 지역의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쉽게 대체될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의 가장 큰 맹점으로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 교류의 부재를 꼽는다.
WSJ은 "기업들은 기업문화를 원격으로 구축할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라는 벤처캐피털 회사 루프벤처스의 IT 애널리스트 진 먼스트의 발언을 전하며 "혁신과 제품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의사소통과 동료애를 유지하는 것이 (기업에)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업체 보스턴 프로퍼티의 CEO 오언 토마스는 재택근무는 물리적 사무실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CNBC에 말했다.
토마스는 "더 젊은 직원을 이끌고 지도할 역량, 자발적인 협업과 이것이 불러일으키는 창의성, 그리고 기업 문화 등은 우리가 전부 화상회의를 할 때는 하기 매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직원들에게도 재택근무가 마냥 지상천국은 아닐 수 있다. WSJ은 "직원들은 유연성을 얻겠지만 가사의 책임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 한숨 돌릴 틈이나 (동료와) 즉흥적인 아이디어 교류를 그리워할 수도 있다"고 썼다.
100% 재택근무 전환보다는 페이스북처럼 '재택+사무실 근무'의 하이브리드형 모델이 유력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어느덧 반년을 향해 가는 코로나19 사태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적 타격은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고 한다. 이 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공식 집계된 것만 30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역사의 또 다른 한 페이지는 코로나19 사태를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를 확산시킨 도화선으로 기록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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