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미국대선 개입?…바이든-전 대통령 대화 반역혐의 수사
젤렌스키, 자국 검찰총장 해임압박 문제 삼아 수사 지시
발단은 수상한 녹취물…11월 미국대선에 영향 미칠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우크라이나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연루된 사건의 범죄 혐의를 조사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국면에 이어 다시 미국 정치, 특히 오는 11월 대선 선거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가디언,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바이든 전 부통령과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화가 담긴 4년 전 녹취물을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녹취물에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당시 부통령으로서 빅토르 쇼킨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을 해임하라고 포로셴코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쇼킨 총장은 2016년 3월 결국 해임됐으며 배후에 미국의 입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녹취물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10억 달러 원조의 대가로 쇼킨 총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유리 루트셴코를 후임자로 정하는 방안까지 논의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검찰이 대응할 것"이라며 "안드리 데르카치 의원의 요청에 따라 검찰총장이 사건처리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는 "나라를 그런 식으로 운영했으니 많은 굴곡과 유죄판결에 직면할 것"이라며 문제의 대화 내용이 반역(외환)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AP통신은 검찰이 이 사건에 중대 반역과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녹취물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디언은 심하게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고도 보도했다.
이 녹취물을 공개하며 의혹을 제기한 데르카치 의원은 러시아, 트럼프 진영과의 유착관계를 의심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데르카치 의원은 과거에 러시아를 지지하는 정당 소속이었고 옛 소련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이던 부친의 영향을 받으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KGB가 운영하던 고교를 졸업한 경력이 있다.
특히 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의 부패 혐의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지난해 접촉하기도 했다.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녹취물이 조작된 것이라며 크렘린(러시아 대통령실)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특수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미국 선거전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미국의 초당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을 저해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검찰수사에서 직접 피의자로 지목되고 있지는 않으나 여러 뒷말에 시달릴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들인 헌터 바이든에 대한 수사를 막으려고 쇼킨 검찰총장을 해임시켰다고 주장해왔다.
당시 헌터는 우크라이나 에너지 회사인 부리스마의 이사로서 매월 5만∼10만 달러를 벌었으며, 부리스마 사주는 부패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 전 부통령은 원조를 지렛대로 삼아 쇼킨 검찰총장의 해임을 압박한 사실을 이미 2018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WP는 쇼킨 총장에 대한 해임 압박이 바이든 전 부통령의 독단적인 행동이 아니라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과 조율을 거친 미국 국무부의 부패척결 대책으로 촉발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녹취물에도 부리스마나 헌터 바이든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WP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조치가 탄핵국면에서 우크라이나에 심기가 불편해진 트럼프 대통령을 달래고 내부의 정적을 공격하며 제반 논란을 검찰에 떠넘기는 다목적 포석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발표하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을 전화통화에서 압박한 사실이 드러나 탄핵 위기에 몰렸으나 상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jangj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