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방지법 텔레그램 못 잡고 '카톡 사찰법' 되나…졸속 논란(종합)
'방송통신 3법'에 업계 반발…시민단체도 "실효성 없이 기본권만 침해"
정부 "과도한 우려…보완책도 추진"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이효석 기자 = 'n번방 방지법'을 비롯해 통신·인터넷업계의 새로운 룰이 될 이른바 '방송통신 3법'을 두고 실효성 대신 부작용이 큰 졸속 입법이 될 것이라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 등 3개 법률 개정안으로, 이달 20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일부 우려를 최소화하겠다고 했지만, 업계와 시민단체는 "졸속 추진을 중단하라"며 공개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에서는 법 개정 취지와 달리 개인의 사적 자유와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문제가 된 해외 사업자에 대한 법 집행은 여전히 어렵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성범죄 방지와 개인 데이터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일 뿐 업계의 우려는 과도하다면서,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에 대해서도 국내외 공조 확대 등으로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 n번방 방지법에 검열·역차별 논란 = 'n번방 방지법'은 방송통신 3법 중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지칭하는 것으로, 인터넷 사업자에 대해 불법 음란물을 삭제하고 관련 접속을 차단하도록 책임을 부과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반대 측에서는 개정안이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통신비밀 보호 등 헌법적 가치를 침해할 뿐 법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n번방 사건이 벌어진 곳은 외국기업의 서비스인 텔레그램인데, 이 법이 시행된다 해도 서버나 본사의 소재조차 불명확한 텔레그램에 대해서는 법 적용이 여전히 불가능해 결국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될 것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시민단체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통신 사업자들에게 이용자를 감시하라고 부추기는 조항"이라며 "국제 인권 기준에 어긋나는 법"이라고 지적했다.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는 "이 법이 취지대로 n번방 방지법이라면 텔레그램까지 적용돼야 하는데, 사실상 국내 메신저만 사찰하는 '카카오톡 사찰법'이 나왔다"면서 "인간의 기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려 들면서 국가는 사업자 처벌만 강화하고 정부 차원의 모니터링 등 대책·지원책은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n번방 방지법이 통과하면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방까지 전부 감시·관리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오픈넷 측은 "입법 취지는 일반에 공개된 정보만 관리하려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추후 검찰이 비공개 대화방까지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텔레그램 등 해외 메신저는 잡지 못하므로 '메신저 망명'을 일으킬 수 있는 입법"이라고 꼬집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일반에 공개된 게시판이나 대화방을 기본 대상으로 하는 법일 뿐, 개인 간 사적 대화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내 메신저 역차별 논란에 대해서는 "해외사업자에게도 법이 적용되도록 법제를 정비하겠다"며 "텔레그램에 대해서는 국내외 수사기관과 협조해 규제 집행력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n번방 방지법은) 불법 성착취물 유통을 방지·처벌하는 데 법적 근거가 미비했던 부분을 보완·강화하려는 취지라며 "텔레그램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고 국내 사업자만 규제하는 꼴이므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불법 방조행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데이터센터 국가감독권 부여에 재산권 침해 반발 = '데이터센터 규제법'으로 불리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은 국가 재난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민간 데이터센터(IDC)의 데이터가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IDC를 다른 방송·통신 시설처럼 국가재난관리시설로 지정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에 따라 IDC에 재난 또는 서비스 장애가 발생할 경우 사업자는 정부에 관련 보고를 제출해야 하고, 위반 시 매출의 최대 3%에 해당하는 과징금 또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필요한 경우 정부가 현장 조사에 나설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시설이 매년 정부에 운영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는 등 이미 규제를 받는 상황에서 중복 규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픈넷 박경신 교수는 "부가통신사업자 신고제가 있는 상황에서 재난관리 기본계획 제출까지 의무화되면 사실상 부가통신사업자 허가제가 된다"고 말했다.
민간 재산에 대해 정부가 관리 및 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반발도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비대면 서비스 확대에 따라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한 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정안은 재난 시 데이터센터의 수습·복구를 비롯해 사후 대응에 대한 규정을 강화했다"며 "기존 규제와 겹치지 않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 넷플릭스 '무임승차' 막으려다 국내기업 부담 커지나 = 넷플릭스 등 일부 해외 콘텐츠 사업자가 국내 인터넷 인프라에 무임승차해 수익을 올리는 것을 막자는 것이 이른바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이 법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자사 서비스로 발생한 과도한 트래픽이 통신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
통신업계는 오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계기라며 반색하고 있지만, 인터넷업계는 자칫 해외 업계 대신 국내 업체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업계는 "통신 서비스 품질은 당연히 통신사가 관리해야 하는데, 고객사인 인터넷기업에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며 "일부 대기업만 이익을 볼 뿐 다수의 스타트업과 고객의 이익을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통신업계는 법 취지 자체가 일부 해외 업체의 '무임승차'를 막기 위한 것일 뿐, 국내 기업과 소비자에 부담을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통신업계는 "이번 개정안을 계기로 해외 업체로부터 정당한 망 사용 대가를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교수는 "입법 안이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있다"며 "좋게 해석하면 부가통신사업자가 충분한 접속 용량을 확보하라는 의도겠지만, 다르게 보면 망이 혼잡한 비용을 부가통신사업자더러 책임지라고 하는 입법"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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