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거치며 미 실리콘밸리에 재택근무 확산…'뉴노멀' 될까
원격근무 늘면 기업 인재 풀 확대되고 밀집 따른 부작용도 해소
"한 사무실 안 쓰면 혁신 아이디어 나오기 힘들어" 반론도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미국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 '박스'(Box)는 4년 전 실리콘밸리로 사무실을 옮기며 화려한 구내식당과 폴크스바겐 밴을 개조해 만든 술집 등으로 사무실을 단장했다.
그러나 박스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에런 레비와 직원들은 8주째 이 사무실에 가지 않았다. 레비 CEO는 그런데도 업무가 여전히 매끄럽게 진행돼왔다고 말했다.
영업팀은 더 많은 고객과 연락하고 있고, 매주 있는 전 직원 모임에는 참석자가 늘었다. 출장이 없어지면서 레비 CEO는 더 많은 시간을 업무에 쏟고 있다.
유연근무제의 오랜 지지자인 레비 CEO는 "통근 시간이 없어지고 비즈니스 모임을 위해 비행기를 타야 할 필요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 등 새로운 현실에 직면한 지 두달이 지나면서 일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번 변화로 인해 업무를 보고 직원을 채용하는 방식에 지속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의 본사가 있는 실리콘밸리는 창의성을 북돋우는 혁신적인 사무공간 배치와 협업 공간, 고급스러운 구내식당 등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보태 IT 공룡들은 최근 들어 사무실에 더 많은 투자를 했다. 우주선처럼 생긴 애플의 50억달러(약 6조원)짜리 본사나 샌프란시스코의 명소가 된 세일즈포스의 61층 사옥, 나무들로 채워진 아마존 시애틀 사옥의 거대한 유리공 조형물 등이 그 사례다.
그러나 IT 기업들은 또 코로나19 사태 속에 재택근무에 가장 먼저 나선 곳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재택근무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곳은 소셜미디어 트위터다. 잭 도시 트위터 CEO는 지난 12일 직무 성격이나 여건상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원이 원할 경우 영구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최소한 올 연말까지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도록 허용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또 내년 6월까지 50명 이상이 모이는 모든 모임을 취소했다.
IT 기업들은 또 콘퍼런스나 제품 출시 행사 등 제품 홍보와 고객 확보에 핵심으로 여겨져 온 행사들을 가상공간에서 개최하는 방법도 실험 중이다.
애플의 경우 매년 6월 열리는 개발자 대회를 올해 처음으로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일부 IT 기업 임원들은 원격근무로의 전환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과 시애틀 등 미 서부 해안에 밀집한 직원들을 분산시키려는 노력을 가속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밀집 현상은 그동안 이들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나 생활비를 치솟게 해 IT 기업이 인재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게 했고, 이 지역에 사는 것을 이들 기업이 너무 값비싸게 만들었다는 비판에 기름을 부었다.
애플·구글에서 일했던 인력 스카우트 고문 호세 콩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다른 지역으로 사업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에 불을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의 레비 CEO는 "어디서든 인재를 충원할 수 있다. 인재의 풀도 훨씬 더 커질 것"이라며 "똑같은 급여를 지급하더라도 직원들이 똑같은 급여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거의 8년째 일하며 온라인 학습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해온 하이디 카즈미어(31)는 지난달 회사와 협상해 급여를 25% 삭감하는 대신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원격근무하기로 했다.
언젠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겠다는 계획이 코로나19 사태로 앞당겨진 것이다.
그러나 재택근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미시간대학에서 하이테크 산업의 원동력을 연구해온 사회학과 교수 제이슨 오언-스미스는 연구 결과 직원들이 한 사무실을 쓰지 않는 것에 단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짧지만 우연한 대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부사장 브린 해링턴은 "원격근무 환경에서 혁신을 일궈낸 회사의 훌륭한 사례는 없다고 본다"며 사무실이 영구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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