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원충, 스스로 시간 읽고 유전자 발현 조절한다"
숙주 생체리듬·빛 신호와 무관히 유전자 발현 동조화
미국 텍사스대 의대 연구진, 저널 '사이언스'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플라스모디움(Plasmodium) 원충은 중간 숙주인 모기 암컷을 거쳐 인체 내로 들어온다.
다시 말하면 원충에 감염된 모기 암컷에 물렸을 때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이다.
모기에 물린 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기는 약 14일이지만, 원충의 종류에 따라 1년 6개월까지 길어지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말라리아 증상에는 일정한 패턴과 주기가 있다.
두통과 구역을 동반한 오한이 먼저 오고 발열과 발한 증상이 뒤를 이으며, 이런 패턴이 사나흘 주기로 반복된다.
3일열 말라리아니, 4일열 말라리아니 하는 병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말라리아 증상이 일정한 주기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말라리아 원충이 내장된 시스템을 이용해 시간을 확인하고 이에 맞춰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 센터(UTSW)의 조지프 다카하시 신경과학 교수팀은 15일 관련 논문을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말라리아 환자의 고열 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건, 모든 원충이 숙주 세포의 적혈구를 일제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원충의 이런 행동은 시간 감각을 가졌으리라는 추론을 낳기에 충분했다. 그런데도 말라리아 원충이 어떻게 시간을 아는지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
다카하시 교수팀은 말라리아에 걸린 생쥐 모델에 실험했다.
인간 등 숙주 생체 리듬과의 연관성을 보기 위해, 한 그룹은 낮과 밤이 12시간씩 교차하는 환경에, 다른 한 그룹은 완전한 암흑 상태에 각각 사흘간 두고 말라리아 원충의 유전자 발현을 검사했다.
혈액에 섞인 말라리아 원충에선 모두 5천244개의 유전자 발현이 관찰됐는데, 80% 이상이 양쪽 환경에서 동일하게 주기적인 발현 패턴을 보였다.
이들 유전자는 같은 시간에 같은 수준의 최고 발현도를 보였다. 이는 숙주의 생체시계를 자극하는 빛 신호가 원충의 유전자 발현 리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숙주의 유전자를 조작해 생체리듬을 하루 26시간 주기로 늘렸더니 말라리아 원충도 이에 맞춰 세포 주기를 늦추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원충의 유전자 발현이 숙주의 늦춰진 주기를 따라가는 덴 며칠이 소요됐다.
다른 동물과 달리 영양분을 흡수하는 시간적 리듬도 말라리아 원충의 주기적인 유전자 발현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말라리아 원충의 이런 시간 동조화 메커니즘은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열쇠가 될 거로 연구팀은 기대한다.
말라리아 원충의 세포 주기를 교란하거나 그 주기상 가장 취약한 시점에 약물을 투여하는 방법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말라리아 환자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말라리아에 걸리는 사람은 2억 명이 넘고, 이 가운데 약 4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에 투입된 클로로퀸도 원래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발됐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