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썩어가는 농작물…베네수엘라의 비극
생활고에 폭력시위·약탈 속출…연료난에 농작물 운송 못 해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오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최근 극심해진 연료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더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이 곳곳에서 폭동을 벌이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연료난과 봉쇄 조치로 제때 내다 팔지 못한 농작물이 썩어가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식량과 연료 부족 속에 이달 들어서만 최소 500건의 크고 작은 시위가 벌어졌다고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가 시민단체인 베네수엘라 사회갈등관측소를 인용해 보도했다.
수도 카라카스에선 아직 시위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방에선 폭력과 상점 약탈도 동반됐다.
전날 볼리바르주에선 거센 시위와 상점 약탈로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쳤으며, 33명이 체포됐다. 진압 과정에서 총에 머리를 맞은 29세 남성이 숨진 자리엔 누군가가 분필로 "배고파서 죽었다"고 썼다고 현지 일간 엘나시오날은 전했다.
또 다른 지역에선 주민 수십 명이 음식을 싣고 가던 트럭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2명이 총에 맞고 32명이 숨지기도 했다.
수년째 경제 위기가 이어진 베네수엘라에선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900만명이 영양 부족에 시달렸는데, 최근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미국 정부의 제재 속에 연료난이 가중된 데다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식품 운송도 원활하지 않아 식량난이 심해진 것이다.
물가도 다시 가파르게 올라 올해 1분기 물가 상승률이 124%에 달하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날 주요 식료품에 대해 다시 가격 통제를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서부 안데스 고원 지역에서는 연료가 없어 수확하지 못한 농작물이 그대로 썩어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주요 채소 생산지인 라그리타의 경우 보통 매주 500대의 트럭이 신선한 채소를 다른 지역으로 실어 날랐는데 최근 운송에 차질이 생기면서 매주 5천t의 채소가 남아돌게 됐다.
1만1천달러(약 1천300만원) 상당의 당근이 모두 썩어서 밭을 갈아엎게 된 넬손 로메로는 로이터에 "시장에 가야 할 작물인데 휘발유가 없어서 운반할 길이 없다"고 호소했다.
수확 시기를 놓쳐 시든 셀러리를 베어낸 아사엘 두케는 "휘발유가 없어서 작물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더이상 씨를 뿌릴 수도 없는 때가 올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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