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최고] 코로나19의 역설…"예방수칙 지키니 건강해졌다?"

입력 2020-04-04 07:00
[건강이 최고] 코로나19의 역설…"예방수칙 지키니 건강해졌다?"

신종 감염병 등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예행연습' 생각하고 실천해야"

"환자 감소세 나타나는 지금, '거리두기·손씻기'에 더욱 집중할 때"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크게 줄고 있다. 이런 상황은 병원들의 경영지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대한병원협회가 지난달 19일 전국 병원 9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 1월과 2월의 입원환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평균 3.68%와 3.49% 감소했다. 그러다 사태가 악화한 3월에는 입원환자 수가 평균 26.44%나 급감했다.

환자감소 현상은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더 컸다.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환자 감소율은 16.68%였지만 종합병원과 병원급은 각각 27.05%와 34.15%로 급감했다.

대학병원급은 치료를 미룰 수 없는 중증질환이 많지만, 동네병원이나 중소병원급은 치료를 잠시 연기해도 되는 경증질환이 대부분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처럼 병원 경영이 어려워진 데 대한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3개월여에 걸쳐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와 손씻기 등 행동이 국민들 사이에 자리를 잡으면서 아픈 사람들이 줄어들고, 심지어는 이전보다 건강해져 병원 방문이 줄었다는 의견이다.

물론 이런 건강 행동 변화가 실제로 병원 환자 감소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된 후에나 면밀한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분석 결과가 어떻든 개인 건강관리 측면에서 볼 때 일부 개연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건강학회 윤영호 이사장(서울의대 교수)은 "그동안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문화, 여가, 소비 등에 많은 비용을 써왔지만, 생존과 관련이 큰 건강에 대한 투자는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한국은 상대적으로 의료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스스로 질병을 예방하려는 노력보다는 증상이 생기고 나서야 병원 진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강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건강 증진에 더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에 가장 필수적인 위생과 건강관리, 특히 건강공동체적인 인프라 구축에 투자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사태가 그동안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잘못된 '의료 쇼핑'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의료 쇼핑은 환자가 값싼 의료비를 이용해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는 사회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살을 빼려는 목적으로 3개월에 걸쳐 병원 30여곳을 전전하며 식욕억제제를 70회 넘게 처방받거나, 오전에 A의원에서 프로포폴을 투약한 뒤 오후에 B의원에서 또 투약하는 방식의 '프로포폴 쇼핑' 사례 등도 의료 쇼핑의 범주에 들어간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A 원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프로포폴 처방에 대한 문의가 종종 있었지만 최근 2개월 사이에는 한건도 없었다"면서 "환자가 줄어 병원 경영은 어려워졌지만, 불필요한 의료 쇼핑은 확실히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가 지속하면 국가적인 감염병 예방체계를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개인별 건강 관리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윤 이사장은 "환자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는 지금, 안심하기보다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다잡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꾸준한 실천으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또 나올 수 있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철저한 예행연습을 통해 예방수칙을 훈련하고 몸에 익힌다면 개인의 건강관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유가 어찌 됐든 환자 감소를 걱정하는 분위기는 역력하다.

내과 개원의 B 원장은 "코로나19에 따른 환자 감소를 예방수칙 준수에 따른 건강증진 효과와 연결하는 것은 아직 무리가 있다"면서 "한국 특유의 불합리한 의료수가 체계에서 중소병원들이 의료 과소비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진료 건수로 버텨왔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양적인 측면마저 무너진다면 의료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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