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선 여객 96% 급감…대형사부터 하청사까지 항공업 '곡소리'
항공업 붕괴 위기…"매출 타격 80% 이상시 상반기내 현금 소진" 분석도
이스타항공·하청업체는 '감원 칼바람'…정부 대규모 지원 호소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하늘길이 사실상 막히면서 대형항공사에서부터 기내식·청소 등을 담당하는 하청업체에 이르기까지 항공업계 전반에 걸쳐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항공업계에 이미 '감원 칼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 항공산업 붕괴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실정이다.
5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3월 넷째 주 국제선 여객 수는 7만8천599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73만6천366명)에 비해 95.5% 급감했다.
지난달 국내·국제선을 합한 항공 여객 수는 174만3천583명으로 1997년 1월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20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
국적 항공사 여객기 374대 중 87%인 324대가 갈 곳이 없어 주기장에 그대로 세워져 있는 상태다.
하루 20만명을 넘나들던 인천국제공항의 하루 이용객 수는 2001년 개항 이래 처음으로 1만명 이하로 떨어졌으며, 운항 편수가 하루 100여편으로 급감하며 제주국제공항에 역전당하기도 했다.
항공협회가 국적 항공사의 국제선 운송 실적을 기준으로 피해 규모를 산출한 결과 올해 상반기 국적 항공사의 매출 피해는 최소 6조4천451억원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매출 타격이 지속할 경우 항공사가 보유 현금으로 높은 고정비를 커버하며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전망이다.
특히 항공산업의 경우 영업비용 가운데 고정비 비중이 35∼40% 수준으로 상당히 높기 때문에 대규모 매출 타격에도 탄력적인 비용 감축이 쉽지 않아 보유 현금 소진이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영업비용(유무형 감가상각비 제외)과 이자 비용을 현금 유출액으로 볼 때 대한항공[003490]은 월평균 8천800억원, 아시아나항공[020560] 4천900억원, 제주항공[089590] 1천억원의 현금 유출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감안하면 작년 말 기준 대한항공은 월 현금 유출액 기준 1.2배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고, 제주항공은 2.0배, 티웨이항공[091810]은 1.5배, 진에어[272450]는 4.1배 수준의 현금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다른 항공사의 현금 수준은 한달치 현금 유출액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매출 타격이 80% 이상이라면 월 현금 부족액이 항공사마다 100억∼2천억원에 달할 수밖에 없어 대부분의 항공사가 상반기 내 현금 소진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작년 일본 불매운동과 미중 무역 분쟁으로 줄줄이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든 데 이어 올해 1분기는 업계 1위인 대한항공마저 적자로 돌아서며 항공사마다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쥘 것으로 보인다.
수년째 자본 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에 이어 에어서울도 작년 자본잠식률 116.7%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의 인수 포기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298690] 등도 자본잠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항공사업법상 자본잠식이 2년 이상 지속되면 항공운송사업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항공업계는 임금 반납, 유·무급 휴가와 희망 휴직 등의 자구책에 이어 희망퇴직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며 사실상 구조조정 수순에 들어갔다.
이스타항공은 최근 1∼2년차 수습 부기장 80여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데 이어 직원의 45%에 달하는 750명을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는 방침을 정하고 세부 인원과 방식 등을 내부 논의 중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그동안 공급 과잉으로 출혈 경쟁을 하던 항공업계에 추가 감원과 기재 축소 등이 이어지며 구조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이미 보유 항공기 23대 중 2대를 조기 반납했고, 8대도 리스 계약을 종료하고 반납할 예정이다. 다른 항공사도 높은 리스료 부담 등을 감안해 리스료 납부 시기 연기 요청과 함께 기재 조기 반납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기내식과 청소 등을 담당하는 항공사의 하청업체에는 '감원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대한항공의 기내식 협력업체 직원 가운데 인천에서 근무하는 1천800명 중 1천명이 권고사직을 당했고, 남은 800명 중 300여명이 휴직 중이다. 기내 청소를 담당하는 이케이(EK)맨파워는 단기계약직 52명을 정리해고했으며 정규직 300여명에 대해서도 추가 해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의 협력업체인 아시아나KO는 다음달부터 무기한 무급휴직을 한다고 공지했다. 아시아나AH는 직원의 50%에 희망퇴직을 통보했고, 또 다른 하청업체는 전 직원에게 무급휴직을 통보하고 권고사직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항공협회는 3일 국토교통부 등에 호소문을 보내 "국내 항공산업 기반이 붕괴하고 있으며, 84만명의 항공산업과 연관산업 종사자들이 고용 불안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정부의 대규모 지원 없이 항공업계의 자구책만으로는 생존이 불가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항공협회는 전체 항공사에 대한 무담보 저리 대출 확대와 채권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등 대규모 정책자금 지원 확대는 물론 항공기 재산세 면제 등 각종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건의했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는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 중단과 여객수요 회복 시점을 논하기보다는 여객수요 회복 이전까지 버틸 수 있는 여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급 보증과 같은 정부 추가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방민진 연구원은 "코로나19 타격이 과거 9·11 테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여객 수요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국내 항공 시장은 진정한 구조조정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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