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나의 중국' 고수에 WHO-'방역모범' 대만 공조 차질"
WHO, 중국 압박에 대만 배제…"방역 노하우 사장되는 결과"
차이잉원 "팬데믹 대응에 대만참여 허용하라" 국제사회에 촉구
(서울=연합뉴스) 이영섭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전 세계에서 연일 격화하는 가운데, 사태를 비교적 잘 통제해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평가받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만이다.
대만은 발병사태 초기부터 코로나19의 근원지인 중국발 항공편의 입국을 과감히 제한했고 확진자 동선도 적극적으로 추적해 공개했다.
이에 따라 국제 사회는 대만이 가혹한 봉쇄조처에 의존하지 않고도 코로나19의 대규모 확산을 차단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공공보건 분야의 국제적 협력을 총괄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직 대만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대만과 WHO의 주요 후원국인 중국 사이의 복잡한 관계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WHO가 주도하는 세계 보건 정책에 대만이 그간 체득한 방역 노하우가 일절 반영되지 않아, 코로나19에 맞서는 국제사회에 오히려 불이익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영국 BBC방송은 30일(현지시간) 대만이 WHO에서 배제돼 국제사회와 방역 관련 전문지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만은 코로나19에 대한 WHO의 긴급회의와 주요 전문가 브리핑에 참여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국제적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이처럼 대만이 배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현지 당국자들은 주장한다.
천스중(陳時中) 대만 위생복리부 부장(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감염병에는 국경이 없기에 어느 지역도 허술한 구멍이 되도록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점, 어느 한 지역의 강점도 전 세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WHO가 이번 감염 사태를 통해 인식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WHO는 공식 석상에서 대만의 회원 승인 문제를 언급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브루스 에일워드 WHO 사무부총장이 지난 28일 홍콩 RTHK방송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WHO의 이런 입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지 기자가 그에게 WHO가 대만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재고하겠느냐고 질문하자, 에일워드 부총장은 한동안 침묵한 후 잘 들리지 않는다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가 재차 대만 관련 질문으로 그를 압박하자 에일워드 부총장은 돌연 통화를 끊었다.
이후 기자는 다시 그에게 전화해 대만의 코로나19 사태 대처를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그는 "우리는 이미 중국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답했다.
WHO의 이런 자세는 대만과 막대한 자금력을 지닌 주요 WHO 회원국 중국 간 관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외교정책을 고수해 대만을 자치적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WHO가 대만을 승인하지 못하도록 중국이 압박을 가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줄곧 제기돼왔다.
WHO는 이날 성명을 통해 대만의 회원국 승인 문제는 직원이 답할 내용이 아니라 "회원국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해명했다.
이에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이번 사태를 경험한 모든 국가가 대만의 역량을 충분히 이해해 국제사회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에 대만이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조지프 우 대만 외무장관은 트위터로 에일워드 부총장의 인터뷰 내용을 공유한 후 "WHO에선 '대만'을 언급하지도 못한다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yo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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