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외면' 독일의 태도변화…일상제한 해제후 의무화 하나
당국, 마스크 효과보다 부작용 강조해와…"제한조치 출구전략으로 고려"
마스크 공급부족으로 의료기관서 자체 제작도…섬유공장, 마스크 생산 시작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사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그동안 외면해오던 마스크에 대해 눈을 돌리고 있다.
독일 보건당국과 언론은 그동안 의료진을 제외하고는 마스크 착용을 사실상 권하지 않아 왔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 격인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마스크 착용시 건강한 사람의 위험도를 낮춘다는 증거는 불충분하다"면서 세계보건기구(WHO)를 인용해 마스크를 착용하면 손 위생 등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 등 보건당국자 및 전문가들은 최근까지도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한노 카우츠 보건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정부 브리핑에서 "마스크의 사용은 모든 조치에 대한 출구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스트리아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늦추기 위해 마트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기로 하면서 향후 대중의 이용이 많은 장소에서도 착용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한 반응이었다.
이는 현재 전국적으로 적용 중인 2인 초과 접촉 제한조치와 공공시설 및 상점 운영 중지 등의 조치가 끝나 일상을 회복하게 되면,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거나 의무화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은 "마스크가 감염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라면서 마스크 재료에 따라 보호 여부가 매우 달라진다고 말했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마스크 착용이 거리 유지와 손 씻기, 접촉 피하기 등의 위생 수칙에 부가해 유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마스크를 착용한 뒤 위생 수칙을 지키지 않는 등의 잘못된 안전 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인식 변화는 최근 코로나19가 통제되지 못한 채 신규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신규 확진자 수가 이틀에 1만명 이상씩 늘어났다. 30일 오후까지 실시간 통계기관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독일의 누적 확진자 수는 6만3천929명에 달한다.
전문가들도 마스크 착용을 권하기 시작했다.
공영방송 ARD에 따르면 독일의 저명한 바이러스 전문가인 알렉산더 케쿨레는 마스크 착용이 바이러스 유행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면서 마스크 착용 캠페인을 시작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케쿨레는 "홍콩에서의 데이터를 보면 마스크는 전염 통제에서 가장 중요한 조치"라면서 현재 감염자가 폭증하는 단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접촉 제한 조치가 완화하면 마스크 착용이 더 중시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연방하원 보건위원회의 에르빈 뤼델 위원장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지 않은 시민이 집밖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데 마스크는 좋은 타협책"이라고 말했다.
독일 사회에선 애초 마스크는 아픈 사람이 질병을 전파하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것으로만 인식됐는데, 이마저도 아픈 사람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까지만 해도 언론은 대체로 마스크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아시아에서나 착용하는 보호구였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시민이 마스크 착용에 나섰을 때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독일에서는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있는 의료기관마저도 마스크가 부족한 현실이다.
오스트리아처럼 마트 방문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가는 가뜩이나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30일 서부지역 도시 보훔의 한 의료기관에서 간호사들이 바느질로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기관의 직원은 45명인데, 최근 지역 보건당국에서 받은 마스크는 40개에 불과하단다. 단 하루만이라도 모든 직원이 착용할 수 없는 수량이다.
이에 이 기관은 인터넷을 통해 구매하려 했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붙어 있거나, 마스크의 질이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마스크 재료가 부족하고 가격이 폭등하고 사기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가짜 마스크가 의료진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서야 언론에서는 마스크 효과를 다시 따져보면서 의료현장이 아니라면 면 마스크도 일정 부분 보호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공급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섬유업체들이 나서 면마스크 생산에 나섰다. 자동차 좌석 덮개를 생산해온 기업 프리벤트는 일시적으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의료진에 공급하기 위해 마스크와 방호복 등을 생산했다.
lkb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