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전문가 "국경봉쇄 제한적으로…한국 코로나19 대응 교과서"
라이언 WHO 사무차장 인터뷰…"백신, 1년 내 상용화 전망"
"WHO는 올림픽 위험 관리 조언만…결정은 주최자가"
"북한, 발병 증거 없어…미중 간 진원지 갈등, 도움 안 돼"
(제네바=연합뉴스) 임은진 특파원 = 20일(현지시간) 오후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피해국에 대한 지원을 총괄하는 핵심 기구이지만, 내부는 예상과 달리 매우 조용했다.
최근 본부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이 잇달아 나오면서 다른 직원 보호와 확산 방지를 위해 출근 인원을 필수 인력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특히 WHO 본부가 자리한 스위스에서도 코로나19 감염자가 6천 명을 훌쩍 넘어서고 지역 사회 감염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연방 정부가 5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재택근무를 강력하게 권고해 WHO 직원들은 모두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 때문에 본부 건물 내에서는 오가는 직원보다 입구에 마련된 발열 감시 기계와 곳곳에 설치된 손 세정제가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각종 화상 회의 등을 통해 코로나19 대응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전염병 전문가인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준비대응 사무차장(Executive Director) 만나 단독 인터뷰를 나눴다. 그는 코로나19 비상사태에 매일 같이 본부로 출근하고 있다.
그는 각국이 코로나19 대응으로 국경을 봉쇄하는 조치는 전염병 확산 방지에는 일시적인 효과가 있겠지만, 사회·경제적으로 극약 처방이라며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을 주문했다.
특히 최근 팬데믹의 진원지가 된 유럽이 잇달아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지만, 이는 코로나19의 유일한 대응책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여행 금지 자체가 장기적으로는 질병의 유입을 차단하지 않으며, 오히려 국경 봉쇄로 경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측면에서 WHO는 지난 1월 30일 코로나19에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할 때도 국가 간 무역과 여행 제한을 권고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덮어놓고 여행을 금지하는 데 반대한다"며 "공중보건에 관한 증거를 토대로 무역과 여행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게 단기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것은 단지 질병 차단을 위해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대책 중 하나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교과서 같은 우수 사례"로 꼽았다.
한국은 다른 나라처럼 전면적으로 국경을 봉쇄하거나 여행 및 이동 제한을 강제하지 않았지만, 코로나19를 억제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은 검사, 격리, 접촉자 추적, 치료 등의 종합적인 억제책을 쓰면서 이동 제한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며 "이 같은 조처로 2월 말 발병이 정점을 찍은 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은 빠르게 대응했고, 단호했고, 포괄적인 대책을 썼다"면서 "이런 전략을 통해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다음에 뭘 해야 할지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는 작은 집단 감염이 일어나고 있는데, 정부가 그 안으로 바로 뛰어 들어가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면서 "한국은 바이러스에 방어적이 아니라 공격적이었다"고 추켜세웠다.
이어 "정부가 대책을 잘 조직했고, 그것을 지역 사회와 시민들이 받아들일 의지도 있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날 한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의 과학자들과 화상으로 진행한 회의에서 한국의 이러한 사례가 공유됐다고 전했다.
다만 라이언 사무차장은 한국은 확진자 수가 감소 추세에 있지만,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 코로나19가 들불처럼 확산하는 데 대해 우려했다.
한국보다 한두 달 정도 뒤늦게 바이러스가 확산한 국가들도 몇 주 내로 심각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이러한 세계적 대유행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면서도 "앞으로 2달 동안 (코로나19가) 진화하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국은 발병이 없거나 산발적, 혹은 집단으로 발병하거나 지역 사회 전파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등의 단계별로 적합한 전략을 수립해 대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라이언 사무차장은 "우리는 무기력하지 않다"며 힘줘 말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 등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의 경우 지난 16일 임상 시험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몇 달 내에 백신이 나오기를 희망한다"면서 "상용화까지는 최소 1년이 걸리겠지만 18개월까지는 안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빠른 해결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 기다림이 좌절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백신이 안전한지 확인해야 한다. 개발되면 모든 사람에게 투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백신이 개발돼도 양이 충분해야 하고, 가격도 적당한 선에서 공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라이언 사무차장은 도쿄 올림픽과 관련해 "몇 주 내로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WHO는 리스크 관리에 대해 조언하고 (개최·연기 등의) 결정은 행사 주최자에 달려 있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북한에서는 "코로나19 감염자가 있다는 보고는 없다"고 전했다.
최근 코로나19의 진원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갈등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에 도움이 안 된다"면서 전염병의 대유행에 정치적으로 갈등하기보다 해결책 모색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마이클 라이언 박사는 = 아일랜드 태생의 의사 출신으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제6대 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가 발탁한 인물이기 때문.
40대 나이에 이례적으로 WHO에서 국장으로 초고속 승진했고, WHO의 전염병 통제를 지휘했다.
잠시 WHO 밖에서 근무했던 그는 지난 2014년 서아프리카를 휩쓸었던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때 '소방수'로 다시 현장에 긴급 투입됐다.
이번 인터뷰도 이종욱 박사가 사무총장 재직 시 조직한 긴급준비대응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회의실에는 이 박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는 이 박사를 "나의 멘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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