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 "석달후 살아남을 기업 없어…50조원 갖곤 태부족"

입력 2020-03-22 06:05
경제학자들 "석달후 살아남을 기업 없어…50조원 갖곤 태부족"

"1997년·2008년 위기보다 심각…확산 지속시 기업 못버텨"

"중국부채·유럽재정도 불안…부동산 하락도 위기촉발 루트"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성서호 정수연 기자 = 경제학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충격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내수가 멎고 수출 길도 꽉 막힌 '내우외환'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되면 기업들로선 '줄도산'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코앞에 닥친 경제 쓰나미(지진해일)에서 기업들이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선 전통적인 정책수단 틀에 얽매여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 경제·금융 상황 진단과 정책 제언과 관련해 성태윤 연세대 교수,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장, 신성환 한국금융학회장(홍익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이인호 한국경제학회장(서울대 교수),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전 고려대 총장) 등 경제학자 6인의 의견을 22일 들었다.

◇ "내·외부 위기 동시에 왔다…대침체 상황 직면"

이인호 교수는 외환위기, 금융위기보다 지금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1997년엔 기아, 한보 등 대기업 몇 군데서 문제가 시작돼 다른 부문으로 확산됐고, 2008년엔 금융시장에서 먼저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며 "지금은 이미 시작 단계에서 (실물경제) 위기가 확산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위기 땐 돈을 풀어 실물 부문으로의 전이를 막으면 되는데 현재는 감염병 확산으로 실물 부문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교수는 현 경제 상황을 내부 위기와 외부 위기가 겹친 '중첩복합위기'라고 봤다.

성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의 문제였고,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의 문제였던 게 다른 나라로 전이됐던 것이었다"며 "지금은 코로나19로 내수가 무너진 상황에서 국제적인 인적·물적 교류도 막혀 추가적인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필상 교수는 "애초 한국경제가 근본적으로 성장 동력이 꺼져가는 불안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돼 버렸다"며 "코로나19가 조기 종식되지 않는다면 '대침체'(great recession) 상황에 직면할 수있다"고 진단했다.



◇ 금융규제 강화의 역설…"은행은 버텨도 기업은 못 버틴다"

금융·외환위기 상황에 이르진 않았는데 주가는 왜 이리 급락하고, 환율은 가파르게 치솟을까.

신성환 교수는 "2008년과 달리 지금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재정정책과 양적완화밖에 남지 않았다"며 "세계금융시장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어서 부양책을 내놔도 지금처럼 불안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고자 미국에서 제정된 '볼커룰', 즉 금융규제 강화가 대형 은행들을 옥죈 게 국제금융시장 혼란을 가속화하는 '규제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동현 교수는 "현재 미국 주요 은행들은 위험자산 보유 한도가 모두 차 버린 상황"이라며 "달러 현금 외에 다른 자산은 추가로 보유할 수 없다 보니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마저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규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전 세계 주식, 채권 가격이 흔들리는 변동성 장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 "현 상태 3개월 지나면 기업 다 죽어…연명시켜야"

문제는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 충격을 가속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강화된 건전성 규제 상황에선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한다 해도 은행들은 몸을 사리면서 대출을 꺼리게 된다.

안 교수는 "사격 금지 명령으로 총을 쏠 수 없는 상황인데 은행에 계속 실탄(돈)만 떠안기고 있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손상호 원장은 "금융기관은 위험자산을 많이 처리해왔기 때문에 당장은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터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문제는 기업들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으로선 매출이 안 나오니 신용도가 떨어지고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이 안 되니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항공, 여행 업종은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긴급 경영자금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인호 교수는 "기업을 빨리 살려내는 게 중요하다. 3개월 이상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기업은 다 죽고 없어질 것"이라며 "3개월 기다리기도 어렵다"고 했다.

전염병 확산이 중단되고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소비를 할 때까지 기업이 연명할 수 있도록 신속히 자금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 "50조원 대책으론 부족…한은, 직접 돈 푸는 것 고민해야"

경제학자들은 과감한 조치를 주문하면서도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재원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도 이미 50조원을 웃도는 규모의 비상금융조치 패키지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11조7천억원 규모의 '코로나 추경'도 국회를 통과했다.

손상호 원장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너무 과한 정책이다' 싶은 수준으로 돈을 풀어야 한다. 빈 공간 없이 실수 없이 정책을 펴려 해선 안 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정부 패키지 대책에 포함된 채권시장안정펀드(10조원)도 좋지만 대기업에 한정해 유효한 수단"이라며 "작년 말 기준으로 재무 상태에 큰 문제가 없다면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을 정부가 다 지원해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하는 지금 상황에서 경제 충격의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안동현 교수는 "정부가 내놓은 50조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 한은이 직접 돈을 푸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금융기관 대출이나 유동성 지원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정책 틀에 얽매이지 말고 중앙은행이 직접 기업에 정책자금 대출을 하거나 정부 발행 국채를 직매입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정책은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재정 지출을 위해 화폐를 계속 찍어내도 된다는 이른바 '현대화폐이론(MMT)'이다. 그러나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이론은 주류 경제학계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안 교수는 "지금은 과거 방식에 머물러선 안 된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우려인데 지금은 물가 상승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 "중국·유럽발 위기 가능성…부동산 하락 시 위기촉발 우려"

경제학자들은 더 큰 위험이 도래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코로나19의 각국 확산세가 단시일에 멈추지 않을 경우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태윤 교수는 "가장 큰 위험은 감염병 확산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인호 교수도 "어떻게든 감염병 확산이 통제돼야 다음을 얘기할 수 있다"며 "확산이 지속된다면 50조원을 붓는다 한들 안 된다"고 말했다.

대외발 위기가 경제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필상 교수는 "가장 걱정되는 것은 중국 경제"라며 "중국경제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와도 같은데, 문제는 막대한 부채 탓에 쓰러지면 일어서지 어려울 것이란 점이다"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유럽도 재정 문제가 내재한 경제구조인데, 이번 사태로 재정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신성환 교수는 부동산 가격 하락이 국내 경제위기를 촉발할 기폭장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신 교수는 "가계부채가 많은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간다면 경제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루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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