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마디로 미칠 지경"…코로나19에 미 한인사회도 직격탄(종합)

입력 2020-03-19 10:55
수정 2020-03-19 12:11
[르포] "한마디로 미칠 지경"…코로나19에 미 한인사회도 직격탄(종합)

영업중지 등 잇단 고강도 조치에 뉴욕 한인타운 썰렁한 적막감

LA 한인타운도 발길 끊겨…"폭동 다시 벌어질까 봐 두렵다" 호소

현지 진출 기업들도 비상…출장 막히고 재택근무에 전화 회의



(뉴욕·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이귀원 정윤섭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미국 내 한인 소상공인들과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이에 대응해 각 주와 시별로 식당 영업 중지나 모임 금지 등 고강도 조치가 잇따라 나오면서 한인사회의 고통과 신음도 커지고 있다.

◇ 한인타운 적막감만…식당들 문 닫고 테이크아웃·배달 서비스만

18일(현지시간) 한인 상가들이 밀집한 뉴저지주 포트리는 썰렁한 적막감이 나돌았다.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로 북적일 점심시간임에도 사람과 차량의 이동이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아예 문을 닫은 식당과 가게들이 즐비했다.

특히 뉴욕주와 인근의 뉴저지주, 코네티컷이 지난 16일 밤부터 공동으로 식당과 바(주점)의 일반 영업과 체육관, 영화관, 카지노 등의 영업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이곳은 더욱 황량해졌다. 파티를 포함해 50명 이상의 모임도 금지됐다. 다만 식당이나 바의 테이크아웃(포장 음식)과 배달 서비스는 허용된다.

평소 점심때면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포트리 중심가의 한 대형 한인 식당은 이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만 식당 출입문에는 60달러 이상을 주문하면 배달이 무료라는 안내장만 덜렁 붙어 있었다. 그러나 식당 안은 의자들이 테이블에 모두 올려진 채 인기척조차 없었다.

인기를 끌었던 또 다른 대형 한인 식당은 아예 영업을 중단했다.

식당 측은 출입문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16일부터 오는 31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한 식당 대표는 "여기서 30년 가까이 식당을 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은 처음이다. 9·11 테러 때도 이러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손을 쓸 수 있는 대책도 없고 한마디로 미칠 지경"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문제는 미국 내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어 이 같은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종업원들 주급을 겨우 챙겨줬는데 앞으로는 대출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이 전날 뉴욕시민들은 48시간 이내에 자택 '대피(shelter in place)' 명령 가능성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현지 한인 소상공인들의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뉴욕주 내 약 120개 한인 회원사를 둔 뉴욕경제인협회의 유대현 회장은 "뉴욕은 전 세계적으로 임대료가 비싼데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니 소매업을 하시는 분들이 어렵다"면서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도 '경제적 피해'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도 설상가상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대한항공 승무원이 한인타운을 다녀갔다는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LA 행정당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LA시 전체의 식당과 유흥업소 영업 중단을 명령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영업 중단 조치 이후 LA 윌셔대로 주변에 밀집한 한인타운에는 인적이 뚝 끊겼고, 마스크를 쓴 채 포장 음식을 찾으러 온 손님들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윌셔대로 중심가에 위치한 한 상가타운의 경우 한인 식당 10곳 가운데 절반이 문을 굳게 닫았다.

일부 식당은 배달이나 포장 음식 주문을 받기 위해 가게 문을 열었으나 매출 급감으로 한숨만 크게 내쉬었다.

한 음식점 주인은 "매출이 평소보다 80∼90% 줄었다"며 "제가 미국에 온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문제는 언제 이 사태가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다른 가게의 종업원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어떻게 버틸지 막막하다"며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일자리가 끊길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1992년 LA 폭동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 식당 주인은 "코로나19 사태가 몇 달 간 지속해 생계가 막막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질까 봐 걱정된다"며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사회 전체가 불안해지면서 LA 폭동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고 호소했다.



◇ 현지 진출 기업들도 초비상…출장 막히고 재택에 전화 회의

미국에 진출한 기업들도 초유의 상황에 사실상 비상 모드에 돌입했다.

한 대기업 인사는 경영 환경이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 16일부터 출근 또는 재택근무를 직원들의 자율에 맡겼으며, 현재 약 80%에 가까운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출근한 직원들은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이나 배달 서비스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회의도 모두 영상 회의나 전화 회의(콘퍼런스콜)로 대체하고 있다. 현지 사업 파트너들과의 회의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출장도 사실상 다 막혔다.

한 대기업은 한국에서 출장을 오는 인사는 미국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출장도 현지 법인장의 재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다른 대기업은 미국 출장자에 대해 한국으로 귀국 시 2주간 자가격리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실상 출장을 오갈 이유가 없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LA 지역의 한인 여행사들과 소상공인들도 돈줄이 마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대료를 내기가 버거울 정도로 영업에 타격을 입은 곳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은 물론 미국 현지 여행을 문의하는 손님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한인타운의 어려움이 갈수록 가중되자 LA 총영사관은 최근 LA와 인근 오렌지카운티, 샌디에이고 지역의 한인 상가 건물주들에게 임대료 인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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