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적막에 휩싸인 빛의 도시 파리, 언제쯤…

입력 2020-03-19 07:07
수정 2020-03-19 18:49
[특파원 시선] 적막에 휩싸인 빛의 도시 파리, 언제쯤…

코로나19 확산 공포에 전 국민 이동금지령 이틀째…비현실적인 침묵에 휩싸여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전 국민 이동금지령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지 이틀째인 18일(현지시간) 파리의 명소들은 행인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전국에 슈퍼마켓과 약국, 주유소 등을 제외한 모든 상점과 음식점에 영업금지령이 내려진 데 이어, 필수 사유를 제외한 이동이 금지되자 평소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파리의 곳곳이 적막에 휩싸였다.

샹젤리제 거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센강의 유서 깊은 시테섬,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가 있는 중앙정원, 몽마르트르 언덕,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오는 트로카데로 광장 등 평소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던 곳들이 모두 일제히 거짓말처럼 침묵에 사로잡혔다.



봄기운이 완연한 이 날 파리는 온화한 날씨였지만, 산책을 하거나 카페 테라스에 모여앉아 한담을 나누는 파리지앵들이 사라져버려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프랑스 방송사들은 몽마르트르 언덕의 기념품 가게들이 일제히 셔터를 내린 모습이나, 화려한 명품 숍이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행인과 차량이 빠져나간 휑한 샹젤리제 거리를 무심하게 화면에 비췄다.

파리 시민들과 여행자들로부터 사랑받아온 뤽상부르공원과 몽소공원도 모두 정부 방침에 따라 빗장을 걸어잠궜다.



잠시 나가 본 파리 남동부 13구의 상가에도 행인과 차들이 평소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파리 시내 대부분의 상점이 셔터를 내리고 기약 없는 영업 중단에 들어간 가운데 약국과 슈퍼마켓만 문을 열었고, 시내버스도 승객을 한두 명씩만 태운 채 지나갔다.

기자는 이동증명서를 프랑스 정부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아 출력한 뒤 서명하고서 거리에 나섰지만 검문하는 경찰관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이동증명서에는 생필품을 구하거나 병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가는 경우, 노인이나 어린이 등을 돌보는 목적의 이동,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직장의 출퇴근, 단체가 아닌 개인 단위의 운동, 반려동물의 산책 등의 목적에 체크하고 본인의 서명을 기재해야 한다.

프랑스 경찰은 이동금지령 둘째날인 이날 증명서를 소지하지 않거나 필수사유 외의 목적으로 거리에 나온 사람 4천95명을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이동금지령의 계도와 위반자 단속, 국경통제를 위해 전국 주요 거점에 10만명의 경찰력을 배치했다. 이동증명서를 소지하지 않고 외출했다가 적발되면 최고 135유로(18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경찰관에게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은 증명서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프랑스 정부는 정부 양식을 인쇄하거나 종이에 자필로 작성해 서명한 서류만 인정된다고 다시 공지했다.

파리 시민들은 2015년 11월 130명의 인명이 희생된 파리 연쇄 테러 직후 선포된 국가비상사태에서도 "공포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카페에 모여 현재의 삶을 즐기려는 태도를 잃지 않았었다.

그랬던 파리지앵들도 신종 바이러스라는 미지의 적 앞에서 정부가 부랴부랴 내놓은 전례 없이 강력한 조치들을 따라 각자를 집 안으로 유폐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았다.

프랑스의 문호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조용한 해안도시 오랑에 페스트(흑사병)가 창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페스트'(1947년)에서 이렇게 썼다.

"그들은 이제 알게 됐다. 우리가 항상 원하고 또 가끔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다정함이라고."

파리지앵들, 아니 전 세계 시민들이 모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 사태가 지나가고 동네 식당과 주점에 모여앉아 가공할 바이러스의 전염을 걱정하지 않고서도 바로 옆에 앉은 타인의 다정함에 기꺼이 감사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yongl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