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코로나19 급증에 극약처방…'단합 과시' 정치적 조치 평가도

입력 2020-03-18 06:10
EU, 코로나19 급증에 극약처방…'단합 과시' 정치적 조치 평가도

"각 회원국 내부 국경통제 중단 겨냥" 관측도…시험대 오른 회원국 연대에 조율된 대응 모색



(브뤼셀=연합뉴스) 김정은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17일(현지시간) 30일간 외국인의 EU 입국을 막는 여행 금지 조치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하는 데 따른 극약 처방으로 평가된다.

유럽에서 가장 상황이 심각한 이탈리아는 누적 확진자 수가 3만명을 넘어섰고 스페인, 독일도 1만명 안팎을 기록하는 등 각국에서 확진자가 급증하며 정부마다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결정은 EU와 27개 각 회원국이 단합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정치적이고 상징적인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날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이뤄진 이번 결정은 최근 유럽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EU 회원국들이 조율된 대응에 한계를 드러내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등 각 회원국이 잇따라 내부 국경 통제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앞서 EU 집행위는 회원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일방적인 조치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특히 식품, 의료 장비 등 필수적 물자와 서비스의 이동은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는 회원국 간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이 계속될 수 있도록 하려는 EU 집행위의 노력의 하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EU 회원국 대다수는 솅겐 협정 가입국으로, 원래는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만 최근 회원국들이 잇따라 내부 국경 통제를 강화하며 빗장을 걸고 있다. 솅겐 지역에서는 국경 통과 시 여권 검사 등을 생략해 가입국 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EU 정상회의 샤를 미셸 상임의장은 이날 화상 회의에 앞서 "이것은 심각하고, 길고, 어려운 위기"라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고 충분한 의료 장비를 공급하고, 연구를 촉진하며, 경제적 악영향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한 EU 외교관은 로이터 통신에 이번 조치는 "유럽 국가들이 일방적인 내부 국경 관련 조치를 중단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누군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라면서 코로나19가 이미 유럽 내부에 확산한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상징적인 차원의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가 이미 유럽 내에 퍼질 대로 퍼졌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내부 국경 문제를 둘러싸고 불거진 EU 회원국 간 분열과 EU 역할의 한계를 수습하고 통일되고, 조율된 대응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시각인 셈이다.

영국 소재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 찰스 그랜드 소장은 이번 제안을 "회원국들이 서로 국경을 닫은 난처한 상황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EU의 대응은 지난 10여년 사이 EU 회원국 간 연대와 EU가 모든 EU 시민을 보호할 것이라는 생각을 시험대에 올려놓은 3번째 사건이라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10여년 전 세계 금융 위기와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에도 각 회원국이 자국의 이익과 자주성을 보호하려 하면서 EU 차원의 공동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은 좌절됐고, 이는 EU 전역에 걸쳐 반(反)EU 정치 세력이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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