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 60마리 이상 뼈로 지은 빙하시대 원형 구조물 발굴
약 2만5천년 전 수렵·채집 구석기 인류 고정 구조물 지어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약 2만5천년 전 빙하기에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선사 인류가 수십마리의 매머드 뼈로 지은 원형 구조물이 러시아 서부 보로네시 인근의 돈강 옆에서 발굴돼 학계에 보고됐다.
매머드 뼈로 지은 원형 구조물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평원 일대에서 약 70개가 발견됐지만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밝혀지지 않아 왔다. 이번에 발굴된 구조물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용도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작은 단서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 엑서터대학교에 따르면 이 대학 알렉산더 프라이어 박사가 이끄는 고고학 연구팀은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20㎞ 떨어진 '코스텐키 11' 구역에서 지난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이뤄진 매머드 원형 구조물 발굴 성과를 정리한 논문을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 최신호를 통해 발표했다.
이 원형 구조물은 폭이 약 12.5m에 달하며 여러 개의 큰 웅덩이가 둘러싸고 있다. 이곳에서는 총 51개의 아래턱뼈와 64개의 두개골을 비롯한 수백개의 매머드 뼈가 발굴됐으며 사슴과 말, 늑대, 붉은여우 등의 뼈도 나왔다.
연구팀은 이 원형 구조물 안에서 동물 뼈 이외에 새까맣게 타 숯이 된 나무와 먹을 수 있는 뿌리나 덩이줄기(塊莖) 등에서 발견되는 연한 식물조직의 잔해를 처음으로 찾아냈다.
이는 앞선 발굴 때와 달리 물과 체로 토양에서 작은 파편들을 걸러내 분석한 덕분에 이뤄낸 성과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당시 선사 인류가 주변에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를 갖고 있었으며,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먹을 수 있는 연한 식물을 구할 곳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빙하기 추위가 절정으로 치닫던 때 선사 인류와 매머드를 이곳으로 이끈 것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혹독한 추위에도 얼어붙지 않는 천연 샘이나 땔감의 존재 등도 동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꼽았다.
당시 유럽의 비슷한 위도에 있던 지역에서는 사냥감이나 채집할 식물, 땔감 등이 없어 대부분이 따뜻한 기후를 찾아 남하해 선사 인류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약 7만5천년 전에서 1만8천년 전까지 북유럽을 덮친 마지막 빙하기는 약 2만3천년~1만8천년 전에 절정을 맞았으며, 겨울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발견된 매머드 뼈 원형 구조물도 기온이 더 내려가면서 결국 버려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떠돌던 후기구석기시대의 선사 인류가 적어도 60마리 이상의 매머드 뼈를 모아 이런 고정 구조물을 지은 것은 당시 생활방식에 맞지 않는 놀라운 일로 분석했다. 특히 매머드를 직접 사냥했든 아니면 주변의 죽은 매머드에서 가져왔든 무거운 뼈를 한곳에 모으는 것만으로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숯이 원형 구조물 안에서 발견된 것은 이 구조물이 혹독한 추위를 피하는 일시적인 주거지나 사냥한 매머드 고기 등을 저장해두는 창고 등과 같은 역할을 했을 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앞선 연구에서는 한 번에 수개월씩 거주했던 곳이라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으나 프라이어 박사 연구팀은 코스텐키 11 주변의 활동량이 장기 거주지에서 기대되는 것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나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봤다.
프라이어 박사는 "고고학적 결과는 선사 인류가 절정으로 치닫던 빙하기의 혹독한 추위와 적대적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준다"면서 "코스텐키 11 유적과 같은 위도에 있던 유럽내 다른 곳들은 이미 버려졌지만 이곳의 선사 인류는 식량과 피난처, 물을 찾아내 적응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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