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코로나19 장벽 세우지만 적은 내부에 존재"

입력 2020-03-16 10:26
수정 2020-03-16 18:05
"유럽, 코로나19 장벽 세우지만 적은 내부에 존재"

NYT 사회불안 조명…"옆사람이 바이러스 된 격"

"주변 모두가 위험" 개개인 사이 안보이는 장벽 등장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이탈리아를 필두로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서운 속도로 번지자 적지 않은 유럽 국가들이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있다.

중국에서만 창궐하는 줄 알았던 코로나19 확산 거점이 이탈리아로 옮겨오자 유럽은 국경을 엄격히 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 이웃, 친구는 물론 가족 간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두도록 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가장 위험한 적으로 만들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실 코로나19는 국경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들쑤시고 다니는데 유럽 각국이 내놓는 서로 다른 해법은 외부 요인에만 집중함으로써 개인을 파편화하고 있다는 게 NYT의 지적이다.

불가리아 자유주의전략연구소장 이반 크라스테프는 "이제 (코로나19는) 국가 간 국경 문제가 아니라 개인 간 문제가 됐다"며 "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위험한 존재가 됐다"고 설명했다.

크라스테프 소장은 난민 수용에 인색한 유럽의 분위기를 꼬집으며 "이제 당신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난민이 아니라 모두가 됐다"며 난민들조차 전쟁과 전염병 중 무엇이 더 무서운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2003년 별세한 철학가 조지 슈타이너는 유명한 에세이 '유럽에 관한 견해'(The Idea of Europe)에서 유럽의 문화 정체성으로 '카페'와 '산책'을 꼽았는데 코로나19가 이 둘을 모두 망가뜨리고 유럽을 고립과 외로움으로 이끌고 있다고 크라스테프는 진단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장 도미니크 모이시는 코로나19가 문고리를 잡는 것만으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만들어냈다며 "코로나19는 불확실성에 불확실성을, 공포에 공포를 더하고 이미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불안함을 가속했다"고 분석했다.

두 눈으로 잔인하게 사살한 피해자를 확인할 수 있는 테러 공격과 달리 코로나19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테러 공격보다 더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극대화한다고 모이시 소장은 설명했다.

유럽연합(EU) 외교 · 안보 고위대표 특별보좌관인 나탈리 토치 독일 튀빙겐대 명예교수는 "국경이 없는 바이러스의 역설은 국가와 국가 사이 그 국가 안에도 국경을 세운다는 점"이라며 "조화롭지 않게 장벽을 세운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상황이 그저 암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6천만 국민의 발이 묶인 이탈리아에서 각자의 집 발코니에 서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연대 의식 속에서 희망을 읽었다고 토치 교수는 말했다.

이탈리아 로마에 머무는 토치 교수는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 책임감과 연대감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금까지 (코로나19가) 소외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