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에 놀란 트럼프, 재선 위기감 속 비상사태 배수진

입력 2020-03-14 09:48
수정 2020-03-14 12:09
코로나19 확산에 놀란 트럼프, 재선 위기감 속 비상사태 배수진

대국민연설 이틀 뒤 1시간여 회견…질병 대응 이례적 국가비상사태 선포

미 언론 "코로나19를 독감과 비교해온 트럼프의 상징적 전환점"



(워싱턴=연합뉴스) 임주영 특파원 =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을 거듭하며 '위협'이 코앞에 닥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마침내 국가비상사태 선포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이 내려진 가운데 자국에서도 확산세가 지속하면서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초강수를 빼 들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트럼프 대통령의 13일(현지시간) 회견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당일인 11일 밤 백악관 집무실에서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한 지 불과 이틀 뒤에 열렸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코로나19에 대해 잘 통제하고 있다면서 위협을 애써 축소 또는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달 들어 입장을 '총력 대응'으로 선회했다.

정부의 대응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이번 사안이 대선판으로 번지는 양상마저 보이자 재선 가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며 위기감 속에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방 정부의 모든 권한을 발동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다며 주 정부와 지방 정부를 위해 500억 달러의 자금을 풀겠다고 밝혔다.

또 환자 치료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연방 규제나 법률 적용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병원의 입원 기간 제한이나 특정 보건의료 사업자의 면허증 보유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지 않고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게 된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원격 진료가 활성화되고 검사를 위한 민관 협력도 강화한다.

공중보건 전문의가 중요한 지역으로 판단한 곳에서는 차를 탄 채로 검사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검사를 도입한다.

이런 조치는 환자가 급증하는 데도 적절한 검사가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연방 정부의 지원도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한 대책으로 보인다.

경제 충격 완화를 위해 연방 정부의 학자금 대출 이자를 면제하고, 에너지 시장 지원을 위해 전략 비축유를 구매하겠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는 지난 몇 주간 바이러스 위협을 경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미 국민에게 보여주려고 애썼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바이러스로 인해 여러 전선에서 위기에 대처하는 백악관이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압박감을 반영하는 듯 이날 기자회견은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오후 3시 30분께 시작해 1시간 10분 넘게 진행됐다. 정부 대응책을 총괄 지휘하는 백악관의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를 이끄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앨릭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데비 벅스 TF 조정관, 앤서니 파우치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 등 전문가들도 대거 배석했다. '드라이브 스루', 코로나19 질병 특징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이들이 나서 상세한 설명에 나서기도 했다.



이번 발표는 코로나19 발병 최일선에서 싸우는 주 정부에 숨통을 틔워줄 전망이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국가비상사태에 따라 주 정부는 비상 근무자, 의료 검사, 의료용품, 백신 접종, 의료시설 보안 등의 지출과 관련, 연방 정부에 75%의 비용 분담을 요구할 수 있다.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1988년 제정된 스태퍼드법에 근거한 조치다. 이 법에 따른 추가 대책도 가능하다.

CNN에 따르면 스태퍼드법에는 주 정부가 연방 정부에 주요 재난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물자 추가 지원, 주민 수송과 물류 지원, 임시 의료시설 설치 등이 가능하다.

이번처럼 질병 발발에 대응해 국가비상사태가 발동된 사례는 많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은 통상 대규모 자연재해에 대응해 스태퍼드법에 따른 비상사태를 선포한 사례가 많았다고 AP는 전했다. 공중보건 위협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사례는 1960년대 이래 몇 차례에 불과했다고 더힐은 전했다.

질병 발발과 관련해 국가비상사태를 동원한 것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2000년 모기로 인한 전염병인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대응을 위해 뉴욕주와 뉴저지주에 선포한 두 차례 사례가 유일하다고 더힐은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를 위한 예산 배정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극한 대치'로 치달았던 지난해 2월 15일에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비상사태 선언은 정부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추가 자원을 결집할 수 있도록 해준다"며 "그건 또한 코로나바이러스를 계절성 독감과 비교하고, 행정부가 발병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징적인 전환점"이라고 짚었다.



z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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