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들불' 독일, 뒤늦은 메르켈 등판…이제 '한국 배우기'

입력 2020-03-14 09:05
코로나19 '들불' 독일, 뒤늦은 메르켈 등판…이제 '한국 배우기'

메르켈, 지역감염 확산 보름 만에 기자회견…엄중한 상황 냉정히 평가

행사취소 권고했지만 느린 반응…팬데믹 후 베를린 클럽·호프집 영업중지

슈피겔·차이트 등 한국 대응 호평…독일의 한국식 '드라이브 스루' 1면 사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뒤늦게 특단의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규모 확산 사태 속에서도 특별한 확산 방지 대책이 나오지 않던 독일에서는 13일 상당수의 주(州)가 휴교령을 내렸다.

극장과 박물관 등의 공공장소의 운영도 중단되기 시작했고, 분데스리가도 멈춰섰다.

연방정부는 이날 경제피해 대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전면에 나서지 않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 11일에서야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비상 상황임을 국민에게 설명했다.

독일에서 확진자는 지난 9일 1천112명에서 14일 3천400여 명에 달했다. 4일 만에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유럽에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이어 확진자가 가장 많다.



◇ 지역감염 초기 이탈리아서 돌아온 여행객에 무대책

독일은 지난달 말부터 이탈리아에서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한데 이어 한동안 잠잠하던 자국 내에서도 지난달 25일부터 확진자가 속출하기 시작하자 대응하기 시작했다.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이 같은 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독일에서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다"면서 정부의 공동대응팀이 가동했다고 밝혔다.

이후 슈판 장관은 일주일에 두어 차례씩 기자회견을 했으나, '손을 자주 씻으라'는 당부를 이어가고, 보건 체계가 잘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을 뿐 구체적인 확산 방지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마스크에 대해선 바이러스로부터 보호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의료진의 마스크를 확보하기 위해 마스크 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언론에서는 2월 중순 이후 이탈리아를 여행한 시민들이 돌아온 뒤 확산이 우려된다고 지적했지만, 자가 격리 권고와 같은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특히 이탈리아 북부와 가까운 바이에른주(州) 등에서 이탈리아로 스키 여행을 많이 떠난다는 점이 우려를 샀다.

이런 가운데 카니발 행사와 같은 대형 행사에서 지역감염이 확산했고, 확진자가 속출하는 인근 지역에서도 분데스리가 경기는 열렸다. 클럽 등 밀폐공간의 운영은 계속됐다.



그러다가 슈판 장관은 지난 10일에서야 1천 명 이상이 참석하는 대형 행사에 대해 취소를 권고했다. 그런데도 행사 취소에 대한 각 주의 의사 결정은 더뎠고, 독일축구연맹은 분데스리가의 중단에 대해 검토하겠다는 반응 정도를 보였다.

이어 다음날 메르켈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언급을 했다.

지역감염이 이뤄지기 시작한 지 보름 만이었다.

일부 언론이 메르켈 총리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어떤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며 비판하던 상황이었다.

각 주에 권한이 많은 연방국인 독일이 바이러스 확산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 대응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선 중앙정부의 적극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냉정하게 현실론을 펼쳤다. 그는 "전문가들이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인구의 60∼70%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될 것이라고 한다"면서 "확산 속도를 늦춰 보건 체계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언론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보다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현실적으로 총리가 약속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평가했고,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투명하게 공개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 팬데믹 선언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메르켈 총리의 기자회견 직후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자 독일 사회는 그제야 잔뜩 긴장하면서 행사 취소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등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이날 연방 16개 주 가운데 13개 주가 어린이집과 유치원, 각급 학교를 상대로 부활절 방학까지 사실상 5주간 휴교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분데스리가는 리그를 중단했고, 메르켈 총리는 전날 1천 명 이하의 행사에 대해서도 취소를 권고했고, 가능한 한 사회적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뜩이나 사재기 징조가 보이던 마트에는 생필품을 비축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화장지는 진열대에서 찾기가 쉽지 않은 품목이 됐다.

최근 버스 운전석 뒤에 테이프를 둘러 승객들의 접근을 막은 베를린 당국은 지하철과 버스 운행의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

베를린 당국은 이날 클럽과 호프집, 바의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클럽은 베를린에서 초기 확산의 기점이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늘리고, 출퇴근 시간의 조정을 통해 대중교통 이용 시 혼잡을 피하도록 했다.

그러나, 근무 중 손을 씻기 어렵고 대면 접촉이 많은 택배와 배달업 종사자, 택시 운전사들은 마스크 없이 일하고 있다.



◇ 다급해지자 한국 대응방식 주시

독일 언론은 한국의 투명한 코로나19 진단 검사와 확진 경로 파악 등 대응 방식에 관심을 가져오다 '펜데믹' 선언 이후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독일에서는 서유럽 국가 중 코로나19 진단이 빠르게 이뤄지는 편이지만, 한국과 비교해서는 상당히 느린 상황이다.

지난달 말 한 차례 한국의 대응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기사를 실은 주간 슈피겔은 12일 '세계가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빠른 진단 상황 등을 소개하면서 "한국만큼 코로나 전염병에 잘 대비하는 나라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슈피겔에는 베를린 샤리테 병원의 바이러스 권위자인 크리스티안 드로스텐이 "최고의 모범 사례다. 독일도 이런 (높은) 검진율에 도달할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평가한 점도 소개했다.

특히 중국의 우한과 달리 대구가 봉쇄되지 않았다는 점을 소개하면서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시민의 자유를 시험대에 올려놓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 민주주의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려고 한다"면서 "투명성과 공동체 의식, 월등한 의료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차이트온라인도 '동아시아는 어떻게 바이러스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가'라는 기사에서 한국의 검사 속도와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등을 소개했다.

최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 등 유력지들은 독일의 일부 병원에서 운영하기 시작한 한국식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의 모습을 1면 사진으로 게재하기도 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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