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는 왜 '팬데믹' 선포를 주저할까?
코로나19 팬데믹 기준 미비·억제책 유효 판단
H1N1 팬데믹 선포 당시 "성급·과도 대응" 비난도 부담
(제네바=연합뉴스) 임은진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서운 기세로 전 세계를 휩쓸면서 많은 전문가가 이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CNN 방송도 9일(이하 현지시간) "현재의 코로나19 발병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쓸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세계 보건 정책을 관장하는 세계보건기구(WHO)만은 팬데믹 선포를 주저하고 있다.
지난 1월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지난달 28일에는 글로벌 위험도도 가장 높은 단계인 '매우 높음'으로 상향 조정하며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유독 팬데믹이라는 단어 사용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왜일까?
WHO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간 수십 차례 진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나온 발언과 연합뉴스의 질의에 대한 답변 등을 통해 유추해볼 수는 있다.
일단 WHO에는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기준이나 규정이 아직 없는 상태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A(HINI)가 발병했을 당시 정해놓은 팬데믹 기준만 있을 뿐이다.
WHO는 H1N1에 대한 팬데믹을 "새로운 질병의 전 세계적인 확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 타렉 야사레비치 대변인은 "2009년 인플루엔자에 대한 새로운 (팬데믹) 정의는 만들어졌지만, 코로나19를 위한 (팬데믹 정의는) 아무것도 규정된 것이 없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을 정의하기 위해 여러 기구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WHO는 6단계로 구성됐던 인플루엔자에 대한 팬데믹 시스템을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팬데믹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팬데믹을 선언하면 통상 각국이 바이러스의 억제(containment)에서 완화(mitigation)로 정책을 전환하게 된다.
억제는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진단하고 격리하며, 이들의 접촉자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전염이 확산하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일단 바이러스가 많이 확산해서 격리로는 방역이 불가능하거나 실현할 수 있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완화로 전환하게 된다.
이 경우 언제 어디서든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휴교를 하거나 대규모 행사를 연기·취소하면서 확산 가능성을 줄이는 데 집중하게 되는데, 현재로서는 억제책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WHO의 설명이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최근 언론 브리핑에서 팬데믹 선포가 각국의 바이러스 억제를 위한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회원국이 억제책에 몰두해야 하지만, 동시에 완화책을 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싶다. 이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2진법이 아니다"라면서 여전히 억제에 방점을 뒀다.
더불어 WHO가 지난 2009년 H1N1에 대해 팬데믹을 선포했을 때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이 일었던 점도 한 이유로 꼽힌다.
당시 핀데믹을 선포한 이후 H1N1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일각에서는 WHO가 일부 제약회사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대응을 했다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WHO가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 선포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있다.
다만 코로나19 발병 국가가 100개국이 넘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각각 10만 명, 4천 명이 넘어서자 WHO도 지난 9일 팬데믹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고 인정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팬데믹의 위협이 매우 현실화했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통제될 수 있는 첫 팬데믹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 바이러스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국에 보다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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