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앞당긴 0%대 금리시대…공포 진정시킬 수 있을까(종합)
미국 이어 한은도 유동성 확대 대열…시장안정·경기부양 효과는 미지수
금리하한 근접해 추가 인하는 신중할 듯…"추가인하 불가피" 전망도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이지헌 정수연 기자 = 16일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75%로 전격적으로 낮추면서 한국도 뜻하지 않은 0%대 기준금리 시대를 맞게 됐다.
한은이 '빅 컷'을 단행한 데에는 코로나19가 빠른 속도로, 세계 전역으로 확산함에 따라 글로벌 경기가 침체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는 위기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등 서비스업의 피해 구제 차원에서 실질적인 차입 금리를 낮춰주고자 하는 직접적 목표도 겨냥했다.
◇ 글로벌 중앙은행 유동성 확대에 한은도 가세
한은이 이날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금리를 0.50%포인트 낮춘 것은 코로나19가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급속히 확산하면서 세계 경제가 예상 밖의 큰 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대응 수준을 보면 현재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느껴볼 수 있다.
연준은 15일(현지시간) 코로나19 대응 조처로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내렸다. 2주 새 두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5%나 끌어내린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상황에 준하는 조처다.
한은은 당초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국회 통과를 지켜본 뒤 17∼18일께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견됐지만, 이날 임시 회의를 열어 '빅 컷'을 단행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실물경제로 영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었다"면서 "미 연준의 금리 인하가 (한은의) 대응 여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 시장 심리 안정 효과 낼까
이 총재의 발언에서 보듯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1차적으로 시장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1%포인트나 끌어내렸음에도 시장 심리가 전혀 회복되지 못하자 마음이 더욱 급해졌을 수도 있다.
통상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위험자산인 신흥국 통화의 강세로 연결되는 것이 공식이지만 이날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8.3원 내린 1,211.0원에서 출발했으나 갈수록 우상향 곡선을 그리다 결국 6.7원 오른 달러당 1,226.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2016년 3월 2일(1,227.5원)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날 코스피 역시 33.99포인트(1.92%) 오른 1,805.43으로 개장했으나 3.19%(56.58p) 내린 채로 폐장했다.
연준의 금리 인하가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를 전혀 소생시키지 못했고 장 후반으로 갈수록 공포가 되살아났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의 금리 인하가 과연 한국의 시장 심리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일단 의문 부호가 찍혀 있다.
◇ "경기 부양에 일부 도움…큰 기대는 어려워"
금리 인하가 실물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지에 대해서도 단기적인 기대는 어렵다는 정서가 강하다.
전반적인 경제 활동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수요 자체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통화정책으로 풀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중 소비 관련 속보치를 보면 한국을 찾은 유커는 1년전 대비 76.1% 감소했다. 할인점 매출 감소폭은 19.6%, 백화점 매출도 30.6%나 줄었다.
이런 식의 매출 급감 상황에서 이자 비용을 낮춰주는 정도의 대응이 직접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하는 자본비용을 낮춰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현재 상황은 수요 자체가 실종인 상태이기 때문에 일부 도움은 되겠지만 큰 기대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하에 따른 실질적인 경기부양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경제성장률이 1∼2%인 상황에서 0.1%포인트라도 올라간다면 눈에 띄는 효과"라고 덧붙였다.
이주열 총재는 경기 전반의 부양 효과보다는 직격탄을 맞은 부문을 직접 지원하는 차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코로나19에 취약 부문,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차입 비용을 가능한 큰 폭으로 낮출 필요가 있다고 봐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이 한 발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총재는 '실기론'에 대해 "지난달 동결 결정은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며 "재정정책과의 조화, 주요국의 정책금리 조정 등을 봤을 때 지금이 금리인하 효과가 더 잘 나타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 추가 완화 필요한데…실탄도 부족
금리가 연 0.75%로 내려오면서 통화정책 여력 측면에서 쓸 수 있는 '탄환'이 사실상 거의 소진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경계에 머물러 있고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여타 선진국처럼 '제로금리' 정책이나 양적완화 정책을 썼을 때 급격한 자본유출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문제는 추가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는 "떠밀려 금리 인하를 했는데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게 더 우려스럽다"며 "2월 거시지표가 나오는 월말이 되면 금리 추가 인하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총재는 "금리의 실효 하한선은 금융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라면서도 "(다만) 미 연준의 금리 인하 폭만큼 내려가는 것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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