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제한 앞둔 일본 하네다공항 가보니…막판 입국 행렬
한국 거주 일본인, 일본 유학 한국인 학생 서둘러 입국
출국장은 한산…중국인 관광객 거의 안 보여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당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사람 수가 거의 제로(0)가 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본 정부가 지난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자국 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으로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과의 인적 왕래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중국과 한국으로 연결되는 하늘길과 해상길을 9일 0시부터 3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막기로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사상 초유의 이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과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일본의 코로나19 대응 부처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일 현재 일본 내 감염자 수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승선자를 제외하고도 450명을 넘는 등 자국 내에서도 이미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있다.
또 해외 감염원의 국내 유입 통로로 지목되는 공항 검역에서 확인된 환자는 1명뿐이다.
아베 정부가 갑자기 취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 정책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책으로는 과학적 근거가 약하고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아베 정부는 올 7~9월의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앞두고 어떡하든지 코로나19의 자국 내 확산을 막아 올림픽을 치르려 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 등을 겨냥한 입국 제한 조치는 그런 희망과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면서 일본 내에서 본격 확산 조짐을 보이는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절박감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이번 입국 규제를 앞둔 7~8일 일본 수도권의 관문인 나리타(成田)공항과 하네다(羽田)공항에는 규제를 피해 서둘러 일본으로 들어오는 일본 국민과 한국 유학생, 재일교포 등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본 정부는 9일 0시부터 한국과 중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자택이나 호텔 등 지정된 장소에서 2주간 대기토록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이 대상에는 일본인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일본인도 9일 이후 한국에서 입국할 경우 2주간 자가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리타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할 경우 자가용, 렌터카 등 독자적인 이동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관광 목적 등의 경우 최장 90일까지 허용되던 무비자 입국과 기존 발급 비자의 효력도 9일 0시부터 일단 이달 말까지 잠정 정지된다.
이에 따라 신학기를 앞둔 유학생이나 일본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각자 사정에 맞게 서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9일 0시부터 하늘길로 일본에 들어올 수 있는 관문은 하네다공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쿄 도심에서 먼 나리타공항과 오사카(大阪)지역의 간사이(關西)공항 등 두 곳만 남고 모두 막히게 된다.
사실상 일본 정부가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길을 한시적이지만 완전히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하루 평균 15편이 다니는 하네다공항과 한국 간 항공 노선이 끊기는 것은 일본 정부가 나리타공항 쪽으로 국제선을 집중하고 하네다공항을 국내선 전용으로 운영하는 정책을 펴다가 하네다의 국제선 기능을 되살린 2003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일본의 주요 언론은 이처럼 강력한 입국 규제 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서둘러 일본으로 들어오는 현상을 막 출발하려는 버스나 전동차를 타기 위해 뛰어드는 상황을 묘사할 때 쓰는 '가케코미'(驅(け)?み) 입국이라고 명명했다.
입국 규제 시행을 몇 시간 앞둔 8일 오후 하네다공항 국제선터미널 입국장은 한국발 항공편이 도착해 승객들이 내리면서 갑자기 붐비는 모습이 연출됐다.
중국 쪽에서 가물에 콩 나듯 들어오는 항공편이나 한국 쪽에서 넘어오는 여객기를 이용한 '가케코미' 입국객들이 출국장에 나타나면 일본 기자들이 달려들어 취재하는 상황도 반복됐다.
한국에서 반도체 관련 일을 했다는 와타나베 하야토(49) 씨는 일본 취재진이 쏟아내는 질문에 "회사에서 일정을 당겨 들어오라고 해서 급하게 비행기를 탔다"면서 "가케고미 승객들로 만석 상태였다"고 전했다.
4월 시작되는 올 신학기부터 게이오(慶應)대에서 문학을 공부할 예정인 한정민(21) 씨는 비자 문제와 하네다공항을 당분간 이용할 수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예정보다 일찍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했다.
그는 "일본 유학이 결정된 친구 중에 규제 시작 전에 서둘러 온 친구가 절반가량이고 나머지는 기다려 보자는 쪽이었다"면서 "오는 25일로 예정된 기숙사 개방 전에 들어와 예상치 않게 별도의 숙박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가케고미' 입국자들로 간헐적으로 붐비는 모습이 연출된 2층의 입국장과는 다르게 하네다공항 3층 출국장에서는 8일 오후 중국어로 말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이미 지난 2월 이후 중국인 방일 관광객 수가 급감해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 중국 본토로 나가는 대부분의 항공편이 결항한 것과 관계가 있는 듯했다.
일본 현지 관광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책이라고 내놓은 한국과 중국인 입국 제한 강화 조치는 사실상 당분간 왕래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parks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