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리 기정사실·0%대도 가능…'가보지 않은 길' 성큼
연준 '전격 빅컷'에 한은도 이달 임시 금통위 가능성 거론
코로나19 확산 따라 추가 인하 가능성…집값 자극이 관건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성서호 정수연 기자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융위기 대응에 준하는 선제적 금리 인하 처방을 내놓으면서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구체적인 인하 시기나 인하 폭에 대해선 불확실성이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기폭제가 돼 한국도 조만간 0%대의 초저금리 시대 진입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8일 한은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통화정책에 민감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6일 연 1.078%로, 현재 연 1.25%인 기준금리에 비춰보면 한 차례(0.25%포인트) 정도의 금리 인하를 선 반영하고 있는 수준이다.
시장의 관심은 한 차례 인하 가능성보다는 한은이 연준처럼 '깜짝 인하'에 나설지, 이후 연 0%대 금리 영역으로 추가 인하에 나설지 여부에 쏠려 있다.
다가오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정례회의는 4월 9일로, 한 달가량 남은 상황. 일각에선 한은이 이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이달 중 임시 금통위를 열어 연준처럼 전격적으로 금리를 내리는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
박석길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이달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현 상황에서는 3분기 중에 0.25%포인트를 추가로 인하할 것으로 봤다.
한은은 지난 4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연 뒤 낸 보도자료에서 "임시 금통위 개최와 관련해서는 과거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시점에서 여부를 예단하여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개최 가능성은 닫아두지 않은 셈이다.
한은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린 바 있다.
설령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는 인하 시기를 4월 정례회의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는 게 대다수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추가 금리 인하가 단행될지는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코로나19의 확산 추이에 따라 경제가 입는 충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공포가 커지면서 이미 연준의 추가 인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미국 금리 선물시장은 이달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100%로 반영하고 있다. 인하 폭도 0.25%포인트(39.6%)보다 0.50%포인트(60.4%)를 점치는 기대가 더 크다.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이 코로나19 충격에 대응해 모든 수단을 쓰겠다고 밝히면서 유럽, 영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의 추가 통화 완화 정책에 대한 기대도 커진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코로나19 확산 충격에 대응하고자 적극적인 통화 완화에 나선다면 한은으로서도 계속 금리 인하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준금리가 0%대로 내려가느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이 언제까지 지속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초저금리 시대는 한국경제가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문제인데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시기가 좀 더 앞당겨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달리 한국은 통화정책 여력 측면에서 쓸 수 있는 '탄환'이 많이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은 한은의 추가 인하에 대한 판단을 신중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한국으로서는 여타 선진국처럼 '제로금리' 정책이나 양적완화 정책을 썼을 때 급격한 자본유출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금리가 낮아져 돈이 더 많이 풀릴수록 생산적인 부문에 많이 쓰이기보다는 부동산으로만 쏠릴 가능성이 큰 점도 한은의 인하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부동산 시장 문제는 지난 2월에도 금통위의 인하 결정을 가로막은 주된 이슈였다.
기준금리가 연 1.00%로 내려간다면 어느 선까지 추가 인하를 할 수 있을지, 즉 '실효하한'을 둘러싼 논쟁이 수면 위로 드러날 전망이다.
한은은 지난 4일 배포한 간부회의 후 보도자료에서 "실효하한이라는 것은 자본 유출 측면만을 고려하여 추정되는 것은 아니며, 실물경제 파급효과라던가 금융안정 측면의 부작용 등 여러 측면에서도 평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금리 인하의 효과는 물론 자본 유출 우려, 부동산 시장 영향, 가계부채 문제 등을 두루 고려해 판단할 문제란 의미로 풀이된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이 제로금리로 가느냐 마느냐는 부동산 시장 및 가계부채 정책과 맞물려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p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