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난민방출에 '인권수호자 자처' 유럽 망신살 뻗쳤다
포린폴리시 "EU, 노력없이 물리력으로 난민사태 대응"
슈피겔 "유럽 이주정책 실패"…인도주의 명성 존속여부 갈림길
(서울=연합뉴스) 김서영 기자 = 터키의 유럽 국경 개방 조치로 그리스와 불가리아 국경에서는 전쟁을 피해 필사적으로 유럽으로 향하려는 난민과 이를 저지하려는 그리스 경찰의 폭력 사태가 뒤엉켜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까지 3만2천명이 넘는 이민자를 체포한 그리스는 향후 한 달간 망명 신청을 받지 않겠다며 입국을 시도하는 이민자들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추방했다.
이 과정에서 전복된 난민선에 타고 있던 어린이 1명을 포함해 2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까지 빚어졌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유럽연합(EU)의 국경이기도 한 그리스 국경을 막고 보호했다"며 난민들이 겪는 참상을 외면했다.
그리스를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역시 그리스를 '유럽의 방패'라고 치켜세우며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최근 불거진 이 같은 사태를 두고 유럽 주요국들의 무능과 위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5일(현지시간) '유럽의 도덕성이 그리스 국경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난민 위기가 재연된 그리스 국경 지역에서 유럽의 '난민 인도주의'가 도마에 올랐다고 진단했다.
FP는 유럽이 밀려드는 난민을 차단하기 위해 2016년 터키와 난민 송환협정(난민협정)을 체결하면서 쉽게 인도적 명성을 얻은 동시에 중동 난민 문제를 다룰 시간을 벌었지만 그간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어떤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도주의적 접근을 늘 강조해온 유럽이 최근 벌어진 난민 문제를 군인과 경찰을 동원한 물리력에 의지해 해결하려는 모습이 당혹스럽다고 비판했다.
FP는 처음부터 터키와 EU의 난민협상이 장기적 해결책이 아닌, EU 공통의 난민 정책을 설계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고 주장했다.
2016년 'EU·터키 성명'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 난민협정에 따르면 터키는 이주민의 EU행을 차단하고, EU 국경에 도착한 난민을 터키에 수용하는 데 합의했다.
EU는 그 대가로 총 60억유로(약 8조원)를 터키에 지원하고, 터키인의 '무비자 입국'을 시행하며, EU 가입 협상에 속도를 내겠다고 합의했다. 그리스의 불법 이민자를 터키로 송환할 때마다 터키 난민캠프에 있는 난민을 유럽 국가에 재정착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난민협정은 수치상으로는 '불법 입국' 차단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에 100만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에 도착했지만, 2017년에는 20만명, 그 이듬해에는 15만명으로 인원이 급감했다. 2019년 상반기에는 약 4만 명만이 유럽에 도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EU는 터키에 대한 비자 규제를 완화하지 않았고, 그리스는 행정 혼선으로 2천명에도 못 미치는 난민들을 겨우 터키에 돌려보냈다. 남은 이주민들은 터키 영해와 가까운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남겨진 채 장기간 방치됐다.
터키에 대한 재정 지원에 대한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FP는 그 중에서도 협상 조건대로 터키에서 온 난민들의 상당수를 유럽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EU는 2016년부터 터키에 거주 중인 시리아인 2만6천500여명을 유럽 각국으로 분산배치 했지만, 이는 협상에서 언급된 7만2천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FP는 여기에 장기적인 난민 관리 정책이나 급작스럽게 난민이 몰릴 경우를 대비한 긴급 대책이 마련되지 않다 보니 또다시 난민 위기가 찾아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EU가 수년간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이주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슈피겔은 "EU 국가들이 그리스에 난민 문제를 떠넘겼고, 꾸준히 증가해온 난민은 그리스의 입국 시스템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갈 수 있을 정도였다"면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오래전부터 예견된 사태"라고 비판했다.
FP는 터키와 국경을 접하지 않은 EU 국가들이 난민을 방어시설 뒤에서 쫓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불가리아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EU가 난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며 "유럽이 인도주의 명성을 유지할지 그 모든 명성을 몰수당할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고 지적했다.
s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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