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美금리인하 등 변화 적절히 감안…정부정책과 조화"(종합)
"비둘기파 발언" 해석…조기 금리인하 기대 키워
임시금통위는 2001년·2008년 두 차례뿐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전격 인하 등 정책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감안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긴급 간부회의를 주재한 뒤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정책여건 변화를 언급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2월 금통위 이후 정책여건 변화로 ▲ 글로벌 경기 하강 우려 확대 ▲ 주요국의 정책공조 강화 ▲ 한미 금리 차 축소를 들었다.
이 총재는 "지난주 후반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기상황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이에 대응해 어제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들이 정책공조를 강화하기로 한 가운데 미 연준이 임시 FOMC 회의를 열어 금리를 50bp 인하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 연준의 이런 조치로 미국의 정책금리(1.0~1.25%)가 국내 기준금리(1.25%)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향후 통화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이와 같은 정책여건의 변화를 적절히 감안할 필요가 있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의 이런 언급은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한 직후 밝힌 입장보다 금리인하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가 언급한 한미 금리차 축소와 주요국의 정책공조 강화는 확인된 사안이고 글로벌 경기 하강 우려 확대는 주요 경제전망 기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세계 경제 전망에서 뒷받침된다고 볼 수 있다.
OECD는 지난 2일 중간 경제전망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속에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2.9%에서 2.4%로 대폭 낮췄다.
만약 코로나19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유럽, 북미로 확산해 장기화할 경우 1.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OCED는 중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5.7%에서 4.9%로 낮추면서 "중국과 밀접히 연관돼 있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2.0%로 하향 조정했다.
이 총재가 이날 "통화정책만으로 코로나19의 파급 영향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 과정에서 정부정책과의 조화를 고려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 대목도 주목된다.
정부가 이날 11조7천억원에 달하는 역대 4번째로 큰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금리 인하가 수반하는 경우 추경의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은 지난 2월 금통위 직후 한 "코로나19 사태가 한은 전망(3월 중 정점에 이르고 이후 점차 진정세를 나타낼 것)에 전제한 대로 진행될지 아니면 그보다 장기화될 것인지를 좀 더 엄밀하게 살펴보면서 결정해 나갈 것"이라는 신중한 발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상황만 두고 보면 통화정책적 대응에 한계가 있지만 연준이 전격적인 인하에 나선 만큼 여건 변화를 향후 정책에 고려하겠다는 것"이라며 "2월 금통위 때 입장보다는 다소 비둘기적(통화완화 선호)인 발언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금리인하는 기정사실이고 4월 9일 예정된 정례 금융통화위원회에 앞서 전격적으로 결정될 것인지에 관심이 더 쏠리는 양상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경제학회장)는 "기준금리를 연 1.0%로 내린다 해도 대출금리가 바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라며 "현 상황에서 한국은 금융중개지원대출과 같은 유동성 공급으로 기업 부도를 유예해주는 방법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이 급할 경우 한은은 이달 중에도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미국 금융시장이 놀랐듯 전격적인 인하가 부작용만 만들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은 경제지표가 더 나빠지는 것을 확인한다는 입장이었고, 반면 연준은 선제적으로 대응해 도산 가능성의 기업들을 돕고 있다"며 "한은이 2월 금리를 동결한 것은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조 위원은 "한은이 4월 금통위 때 금리를 내릴 것으로 판단하며, 코로나19 사태 악화 시엔 임시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내릴 것이라 본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이날 이와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은은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27일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금리를 사상 최대 폭인 0.75%포인트 인하한 바 있다.
앞서 2001년 '9.11 테러' 직후인 9월 19일에도 임시 금통위를 열어 0.50%포인트를 전격 인하했다. 한국은행법은 의장이나 2명 이상 금통위원의 요구에 따라 임시 금통위를 열 수 있도록 규정한다.
미 연준은 전날(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1.00~1.25%로 0.50%포인트 긴급 인하했다. 연준이 정례회의가 아닌 시점에 금리를 내린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또 인하폭도 2008년 이후 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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