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폴란스키 논란으로 얼룩진 프랑스영화 최대축제

입력 2020-02-29 09:32
'성범죄자' 폴란스키 논란으로 얼룩진 프랑스영화 최대축제

미 아카데미가 제명한 폴란스키, 세자르상 감독상 수상…'감싸기' 논란

배우 아델 에넬, 폴란스키에 감독상 돌아가자 퇴장해버려

시상식 극장 밖에선 "폴란스키 강간범" 격렬한 반대시위…폴란스키, 시상식 불참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영화계 최대 축제인 세자르 영화상 시상식이 원로감독 로만 폴란스키(86)의 성범죄 전력을 둘러싼 논란과 운영진 총사퇴로 얼룩져 상의 권위에 커다란 흠집이 갔다.

세자르상은 프랑스 영화인들의 모임인 영화예술아카데미가 매년 최고의 프랑스 영화에 시상하는 프랑스 영화 최대의 축제다.

다수의 성범죄 전력이 있는 폴란스키의 최신작 '장교와 스파이'가 한 달 전 세자르 작품상, 감독상 등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최다 부문 수상 후보작이 되자 폴란스키는 또 한 번 프랑스에서 논란의 한가운데 섰다.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폴란스키의 영화와 이번 세자르상 시상식을 보이콧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지만, 프랑스 아카데미의 알랭 테르지앙 회장은 후보작을 선정할 때 윤리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해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결국 지난 12일 200여명의 프랑스 영화인들이 프랑스 아카데미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자 테르지앙 회장을 비롯해 세자르상 운영진이 총사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세자르상 시상식이 열린 파리 시내 살 플레옐 극장 앞에서는 페미니즘 단체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폴란스키에 반대하는 시위가 내내 이어졌다.



시위대는 폴란스키의 이름에 '강간하다'라는 뜻의 불어단어 'violer'를 합성해 비올란스키(violanski)라 부르며 아카데미의 각성을 촉구했고, 한때 일부 시위대가 시상식장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최루탄을 쏘며 막는 등 충돌도 빚어졌다.

논란의 당사자인 폴란스키는 이런 비난 여론에 결국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전날 발표한 성명에서는 "여성 운동가들이 내게 공개적으로 린치를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교와 스파이'의 출연진과 제작진도 폴란스키가 시상식에 앞서 부당하게 재단을 당했다면서 시상식 참여를 거부했다.

당초 작품상, 각본상 등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장교와 스파이'는 이날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의상상을 받는 데 그쳤다.

시상식이 열리기 몇시간 전에는 프랑크 리스터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폴란스키가 수상하면 "나쁜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라고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례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아카데미 측이 폴란스키의 성범죄 전력과 세자르상 운영진을 둘러싼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을 준 것에 대해서도 분노 여론이 거세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배우 아델 에넬은 폴란스키에게 감독상이 돌아가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퇴장해 버렸다.



폴란스키가 불참한 이 날 시상식에서 그는 내내 조롱의 대상이었다.

시상식 사회자인 코미디언 플로랑스 포스티는 폴란스키 작품이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을 두고 "우리에겐 12개의 근심거리가 있죠. (시위가 벌어지는 극장 밖의 상황과 관련해) 조용해지려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폴란드 출신 프랑스인인 폴란스키는 미국과 유럽에서 저지른 여러 건의 성범죄 전력이 있다.

그는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3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돼 미국 검찰에 유죄를 인정했지만, 범죄인정 조건부 감형협상(플리바게닝)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미국을 떠나 40년 가까이 도피 중이다.

미국은 폴란스키를 여러 차례 자국으로 소환해 기소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스위스에서도 또 다른 성폭행 혐의로 고소됐다가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오스카상(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그를 2018년 영구제명해버렸다.

프랑스 영화아카데미는 미국 아카데미가 이미 제명해버린 폴란스키를 자국 영화인이라는 이유로 계속 감싸려다가 세자르상의 권위를 심각하게 실추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하게 됐다.

yongl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