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리더십] ③ '아슬아슬' 실리 챙긴 훈센 캄보디아 총리

입력 2020-02-25 07:07
[코로나19 리더십] ③ '아슬아슬' 실리 챙긴 훈센 캄보디아 총리

친중 노선으로 시진핑 눈도장 찍고, 美 크루즈선 허용해 트럼프 칭찬

섣부른 웨스테르담호 하선 결정 '아슬아슬'…인도주의 내세우며 방어

(하노이=연합뉴스) 민영규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세계 각국이 앞다퉈 중국과의 항공 노선 운항을 중단하는 등 자국민 보호 조처에 나섰을 때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훈센 총리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중국과의 항공 노선 운항 중단과 현지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을 철수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요구가 있지만, 그렇게 하면 양국 관계가 약해지고 캄보디아 경제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훈센 총리는 또 "이런 위기 상황에 중국에서 우리 학생과 외교관을 철수시키는 것은 중국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우리 학생들이 중국 국민과 행복과 고통을 함께하고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돕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캄보디아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친(親) 중국 국가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훈센 총리의 이 같은 입장 발표는 지나치게 중국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훈센 총리는 한 발 더 나갔다. 천주평화연합이 주관한 '월드서밋 2020' 총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 중이던 지난 3일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방문해 자국 학생들을 격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국 측의 반대로 우한 방문은 무산됐지만, 훈센 총리는 5일 방한 일정을 마친 직후 베이징(北京)으로 날아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며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발병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외빈인 훈센 총리에게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양국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 올리기 원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가 12일(현지시간) 캄보디아의 조직적인 인권침해를 이유로 이 나라에 부여했던 관세 특혜(EBA)를 일부 철회하기로 결정해 훈센 총리가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이런 훈센 총리에게 코로나19는 돌파구를 마련할 기회이기도 했다.

훈센 총리는 같은 날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일본, 태국, 필리핀, 대만은 물론 미국령인 괌에서조차 퇴짜를 맞는 바람에 2주간 바다를 떠돌아야 했던 미국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에 인도주의를 내세우며 시아누크빌항 입항을 전격 허용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는 중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와 협력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곧바로 '국제적 연대의 한 사례'라고 높이 평가했다.

훈센 총리의 친중 노선으로 대립각을 세우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14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아름다운 나라 캄보디아에 감사한다"면서 "미국은 캄보디아의 호의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훈센 총리의 '불도저 스타일'은 아슬아슬했다. 41개국 출신 승객과 승무원 2천257명이 탑승한 웨스테르담호에서 감기 등의 증상이 있는 승객 20명에 대해서만 코로나19 검사를 한 뒤 입항 하루 만인 14일 전원 하선을 허가했다.



훈센 총리는 선착장으로 나가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승객들에게 꽃을 나눠주며 환영했고, 일부와는 악수와 포옹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육안 검사만 받고 배에서 내린 승객 가운데 83세 미국인 여성이 15일 경유지인 말레이시아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웨스테르담호가 일본 요코하마(橫浜)항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처럼 코로나19 확산의 매개체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고, 섣부른 하선 결정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에 따라 하선이 중단됐고, 배에서 내린 승객들도 인접국에서 입국을 금지하는 바람에 1주일가량 캄보디아에 발이 묶였다.



다행히 이후 전수조사에서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고, 미국 질병통제센터가 말레이시아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인 여성도 코로나19에 감염된 적이 없다고 발표하면서 전 세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훈센 총리는 "정의는 캄보디아에 주어졌다"면서 "내가 말레이시아 총리라면 당장 보건부 장관을 해임할 것"이라고 공세를 펴고 있다.

이로써 훈센 총리는 든든한 후원자로 여기는 중국의 두터운 신임을 얻는 동시에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도 다소 회복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과정에 EU의 관세 특혜 일부 철회에 따른 내부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캄보디아에서 확인된 코로나19 확진자가 아직 1명에 그치는 것도 "진짜 질병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두려움"이라고 주장하는 훈센 총리의 어깨를 가볍게 하고 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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