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오늘 총선…미국과 대치 속 보수파 우세 전망(종합)
내년 대통령 선거 '민심 향방' 시금석
미, 총선 하루 전 '선관위 역할' 헌법수호위원회 제재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의회(마즐레스) 의원을 뽑는 선거가 21일(현지시간) 오전 이란 전국에서 시작됐다.
이란 내무부 전국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년 임기의 의원 290명(소수 종파 할당 5석 포함)을 뽑는 이번 총선에는 7천148명의 후보가 출마해 평균 경쟁률 약 25대1을 기록했다.
가장 많은 30석이 배정된 수도 테헤란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는 1천453명에 달해 약 48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란 이슬람혁명 헌법에 따라 만 18세 이상 남녀는 모두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5천800만 명이 유권자로 등록됐다.
개표 결과는 22일 밤 또는 23일 새벽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이란은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신정일치의 이슬람공화국 체제지만 입법부 의원과 행정부 수반(대통령)은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
이란 의회는 정당제가 아니어서 비슷한 성향의 후보가 총선을 앞두고 이합집산해 정파를 결성해 선거에 나선다. 이란 총선은 대선거구제로, 유권자 1명이 주별로 할당된 의석수만큼 후보자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어 최다 득표순으로 당선자가 결정된다.
정파 간 구분이 엄격하지 않아 한 후보자가 여러 정파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21일 오전 투표를 마친 뒤 "총선 참여는 종교적 의무고 이란의 국익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라며 "이란 국민이 서둘러 투표장으로 가길 원한다"라고 독려했다.
이란 지도부가 높은 투표율을 체제의 견고함과 지도부에 대한 국민의 충성도를 증명하는 척도로 본다는 분석도 나온다.
4년 전 2016년 총선에서는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성사에 힘입어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지지하는 중도·개혁 성향이 의회에서도 다수를 차지했다.
하지만 미국이 핵 합의를 파기한 뒤 이란과 대치가 첨예해지면서 이란 내에선 강경한 반미 보수파가 득세했다.
지난달 3일 이란 군부 거물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군에 폭사한 사건을 구심점으로 이란 내 보수세력이 강하게 결집했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개혁 진영은 현 정부가 경제적 성과를 뚜렷하게 내지 못하면서 위축된 분위기다.
중동 전문가와 언론은 대체로 이번 총선에서 보수파가 의회를 장악할 것으로 전망했다.
테헤란에서 최다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점쳐지는 정파는 '혁명군동맹위원회'다. 전 테헤란 시장이자 대선 후보로도 나선 적 있는 혁명수비대 장성 출신 강경 보수 정치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가 이끈다.
이번 총선은 내년 5월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두고 민심의 향방을 짐작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는 정치적 의미도 지닌다.
로하니 대통령은 중도·개혁 진영, 여성·젊은 층의 지지에 힘입어 2013년과 2017년 대선에서 승리했으나 이날 총선에서 보수파가 우세한 결과가 나온다면 이란의 차기 대통령은 반미·반서방 성향의 보수파 인물이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미 재무부는 이란 총선을 하루 앞둔 20일 선거관리위원회 역할을 하는 헌법수호위원회의 위원 5명을 특별지정 제재대상(SDN) 명단에 올렸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총선과 대선에 출마할 예비 후보의 사전 자격심사를 담당한다. 이번 총선에서 예비 후보 1만4천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이 심사에서 탈락했고, 이 중 대다수가 중도·개혁 성향으로 알려졌다.
보수 성향의 원로 이슬람법학자(성직자) 12명으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는 이번뿐 아니라 총선 때마다 중도·개혁 성향의 예비 후보를 탈락시켰다.
미 재무부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이란 정권이 악행을 저지르는 데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권한을 이용했다"라며 "예비 후보 자격 심사로 이란 국민의 자유롭고 공정한 참정권 행사를 방해했다"라며 제재 이유를 밝혔다.
아바살리 카드코다이 헌법수호위원회 대변인은 국영방송에 "적(미국)의 제재로 행복을 느꼈다'라며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것이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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