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슈퍼팩 없는 후보" 큰소리 친 워런도 슈퍼팩 생겼다

입력 2020-02-20 09:20
"나는 슈퍼팩 없는 후보" 큰소리 친 워런도 슈퍼팩 생겼다

지출 한도 없는 후원조직…네바다 경선 앞두고 워런 위한 광고에 100만불 투하

후보와 독립 운영되지만 억만장자 블룸버그와 겨뤄야 하는 후보들엔 '천군만마'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을 통한 '큰손'의 지원을 반대하고 다른 후보들을 비난해온 미국 민주당 대선경선 주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에게도 슈퍼팩이 생겼다.

후원금 한도가 없는 슈퍼팩은 후보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라 워런 의원은 슈퍼팩 반대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TV토론 무대에서 슈퍼팩을 거느리고 선거운동을 해온 다른 후보들에게 큰소리를 쳤던 게 무색해진 셈이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워런 의원의 지지자들은 슈퍼팩 '집요한 추구(Persist)'를 구성하고 전날 당국에 서류를 제출했다.

슈퍼팩은 일반 팩과 달리 한도 없이 자금을 모으고 쓸 수 있는 외곽 후원조직이다. 후보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자금에 목마른 후보에게는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지원군이다.

'집요한 추구'도 곧바로 지원사격에 돌입했다. 22일 네바다주 민주당 경선을 목전에 두고 80만 달러 규모의 TV 광고를 예약하는 등 광고에 총 1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두 번째 경선지인 뉴햄프셔주에서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에게 3위를 내주며 4위에 그쳐 네바다주에서의 선전이 절실한 워런 의원으로서는 단비가 내린 셈이다.

문제는 워런 의원이 그동안 진보적 성향에 따라 '금권'의 힘을 비난하며 슈퍼팩에 대한 반대를 공언해왔다는 점이다.

심지어 뉴햄프셔주 경선을 앞두고 열린 지난 7일 TV토론에서 워런 의원은 "이 자리에서 나와 에이미만 빼고는 모두 억만장자거나 지출 한도 없는 팩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다른 후보를 공격했다.

슈퍼팩을 거느린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은 물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역시 슈퍼팩에 반대하지만 슈퍼팩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클로버샤 의원만 슈퍼팩의 지원 없이 경선 레이스를 돌파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슈퍼팩 결성으로 워런 의원 역시 자신이 던진 비판의 그물을 피해가지 못하게 됐다.

워런 의원 캠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선거운동 첫날부터 워런 의원은 모든 후보가 팔짱을 함께 끼고 슈퍼팩과 억만장자가 민주당 대선후보를 결정하길 원치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고 했다. 슈퍼팩에 대한 반대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성명에는 워런 의원이 '집요한 추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는 담겨 있지 않다고 WP는 지적했다. 캠프 측에 질의해도 답변이 없었다고 WP는 덧붙였다.



클로버샤 의원의 지지자들도 전날 '식탁의 대화'라는 슈퍼팩을 결성하고 네바다주와 다음 경선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40만 달러어치의 TV 광고를 예약했다.

클로버샤 의원 캠프에서도 슈퍼팩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슈퍼팩에 광고를 빼라는 요청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슈퍼팩은 기부액 상한이 정해져 있는 일반 팩과 달리 한도 없이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외곽조직이다. 후보의 슈퍼팩 활동 관여가 금지돼 있어 후보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기부자와 지출액을 공개해야 하기는 하지만 후보에게는 사실상의 '돈줄' 역할을 한다.

슈퍼팩에 대한 후원금 총액 한도 폐지는 2014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대선이 '쩐의 전쟁'으로 변질된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으며 이번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는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어 다른 후보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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