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축소 메르켈, 20년전 정적은 부상…마크롱에게도 비판받아
'후계자' 크람프-카렌바우어의 차기 총리 불출마 속 수세 국면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임기가 2년이 채 남지 않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입지가 점점 위축되고 있다.
같은 기독민주당의 안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가 차기 총리직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메르켈 총리 역시 궁지에 몰린 모양새다.
가뜩이나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의 결정 배경이 된 튀링겐주(州) 총리 선출 결과 문제로 메르켈 총리도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다.
지난달 튀링겐주 총리 선출에서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사실상 '킹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독일 정치권을 요동치게 했다.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는 기민당이 사실상 이를 방관한 데 따른 책임론에 휩싸이게 됐고, 메르켈 총리도 약해진 위상을 실감하게 됐다.
애초 메르켈 총리는 2018년 10월 말 차기 총선 불출마 및 기독민주당 대표직 퇴진 의사를 밝히며 입지 축소가 예상됐다. 2021년까지인 잔여 임기를 채운 뒤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발표였다.
기민당이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부진한 성적표를 거둔 탓이 컸다.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 측과 내각에서 난민 정책 등을 놓고 파열음을 내며 수세적 국면이 계속되는 점도 반영됐다.
당시 메르켈의 승부수는 '위엄있는 퇴장'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권력을 내려놓았지만 영향력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차기 기민당 대표 선거에서 메르켈 총리가 중앙 정치무대로 발탁한 크람프-카렌바우어가 당선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남은 총리 임기를 채우며 16년간 재임해 최장수 총리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길을 닦은 셈이다.
그러나 우군인 크람프-카렌바우어가 정치력을 기대만큼 보이지 못한 채 사퇴하면서 메르켈 총리도 흔들거리게 됐다.
앞으로 크람프-카렌바우어 대표의 후임 자리에 누가 오르냐에 메르켈 총리가 잔여 임기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할지 달려있다.
현재 기민당 내부에서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전 기민당 원내대표와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 등이 직간접적으로 차기 총리 후보직 및 당권에 도전 의사를 나타냈다.
마르쿠스 죄더 기사당 대표 겸 바이에른주 총리도 잠재적인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2018년 12월 당 대표 선거에서 크람프-카렌바우어에 패배한 메르츠는 여전히 당내 우파의 대표주자다.
지난해 12월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기민·기사 연합의 차기 총리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에 올랐다.
공영방송 ARD가 지난 13일 발표한 기민·기사 연합의 차기 총리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츠는 2000년대 초반 메르켈과 당권 경쟁을 벌이다 메르켈이 총리가 된 뒤 2009년 정계를 떠났다가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 복귀했다. 메르츠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을 비판하는 등 각을 세웠다.
메르츠가 당권을 잡게 되면 내각의 원심력은 커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적 메르켈 총리와 가까운 라셰트는 최근 뮌헨안보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유럽연합(EU)에서 독일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메르켈 총리는 대외적으로도 입지가 위축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뮌헨안보회의에서 사실상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이 내놓은 EU 개혁 과제에 대해 메르켈 총리가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또 차기 총선 결과에 따라 총리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로베르트 하베크 녹색당 공동대표와 3시간 동안 회동했고, 죄더 대표와도 따로 만나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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