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군인 대동하고 국회 들어간 엘살바도르 대통령(종합)
군경 장비 확충 위한 차입 계획 놓고 대통령·국회 갈등
야당 의원들 "쿠데타 시도" 비난…국제인권단체도 우려 표시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치안 예산 문제로 국회와 갈등을 겪던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무장한 군인·경찰과 함께 국회 안으로 들어가 국회를 압박했다.
의원들은 "쿠데타 시도"라고 비판했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은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자동 화기로 무장한 군경이 전날 한때 수도 산살바도르의 국회를 점거했다고 보도했다.
국회에 무장 군경이 들어온 것은 1991년 엘살바도르 내전 종식 이후 처음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군인과 경찰이 국회를 둘러싼 가운데 부켈레 대통령은 의장석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부켈레 대통령과 의회의 갈등은 정부의 차입 계획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대통령은 엘살바도르의 심각한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군경이 더 나은 장비를 갖춰야 한다며 1억900만달러(약 1천294억원)의 차입 계획을 승인해 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30년 양당 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당선된 38세 '아웃사이더' 정치인 부켈레는 기성 정치를 비판하며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지만, 국회에선 기반이 취약하다.
엘살바도르 국회 84석 가운데 부켈레가 속한 우파 국민통합대연맹(GANA) 의원은 11명뿐이다.
의회가 차입 계획 승인에 미온적이자 그는 지난 7일 이러한 경우엔 국민이 '반란'을 일으킬 권리가 헌법에 보장돼 있다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거리로 나와 함께 국회를 압박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동시에 9일 임시 국회를 열어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군과 경찰 수장이 곧바로 부켈레 대통령에 지지를 보냈고, 9일 의회 밖에는 수백 명의 지지자가 나와 대통령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차입안을 표결하기 전에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하며, 굳이 임시 국회를 열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상당수 의원이 출석하지 않으면서 9일 국회는 열리지 못했고, 부켈레가 군경과 함께 의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부켈레 대통령은 전날 국회 밖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이 쓸모없는 의원들이 이번 주 안에 계획을 승인하지 않으면 다음 일요일에 또 임시 국회를 열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좌우 한목소리로 부켈레의 행동을 강하게 비난했다.
보수 성향 국민연합당(PCN) 소속 마리오 폰세 국회의장은 "쿠데타 시도"였다고 비판하며 "머리에 총이 겨눠진 채로는 응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좌파 정당 파라분보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의 오스카르 오르티스는 엘살바도르 민주화 이후 "가장 어두운 날"이었다고 개탄했다.
국제 인권단체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것이 위험한 노선의 시작일 수 있다"고 말했고, 휴먼라이츠워치도 대통령의 "무력 과시"를 비판하며 미주기구(OAS)가 시급히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