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최악 총기 테러' 안타까운 죽음들…절체절명 순간도

입력 2020-02-10 10:56
수정 2020-02-10 13:02
'태국 최악 총기 테러' 안타까운 죽음들…절체절명 순간도

일가족 3명·13세 중학생 하늘로…바로 옆 엄마 잃은 고교생도 충격

소리 안 내려 신발 벗고 탈출…화장실 숨어 CCTV 정보로 동선 파악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29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태국 사상 최악의 총기 테러 사건으로 태국 전역이 충격에 빠진 가운데 희생자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도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 8일 오후 태국 수도 방콕에서 북동쪽으로 250㎞ 떨어진 나콘랏차시마시에서 군인 한 명이 군부대 및 대형 쇼핑몰에서 총기를 난사한 뒤 10여시간의 대치 끝에 다음날 사살되는 과정에서 범인을 포함해 29명 이상이 숨지고 50여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5년 8월 방콕 도심의 관광명소인 에라완 사원에서 중국 위구르족 분리주의자들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20명이 사망했던 당시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냈다.

10일 현지 언론과 외신 등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한 나콘랏차시마의 한 병원 영안실 앞에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슬픔이 굽이쳤다.

시리랏 꾸알락사(43)는 범인이 난사한 총탄에 여동생과 매부, 그리고 어린 조카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는 사건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여동생 빠팟차야(33)와 긴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여동생은 범인이 기관총을 난사하던 쇼핑몰 내 슈퍼마켓의 저장 창고에 남편 및 두 살배기 아들과 몸을 숨겼다.

시리랏은 여동생에게 행여 조카가 소리를 내 범인이 숨은 장소를 눈치채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여동생은 시리랏에게 무섭다고 말했다.

시리랏은 "범인의 총소리는 끝도 없이 시끄럽게 울렸지만, 구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여동생과 나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자매가 몇 차례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빠팟차야는 답이 없었다. 범인이 사살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리랏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친구로부터 두 살 난 아들을 안고 있는 여동생의 시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받았다.

이들 곁에는 여동생 남편의 시신도 보였다.



이날엔 13살 중학생 라차논 깐차나메티의 장례식이 열렸다. 라차논은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던 중 범인이 쏜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범인은 부대에서 총기와 군용 차량을 탈취한 뒤 쇼핑몰로 향하는 과정에서도 행인들을 향해 총기를 발사했는데, 라차논은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 누타웃은 장례식에서 "아들을 이렇게 잃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 갑작스럽다"면서 "단지 잘 자라기만을 바랐고, 계속해서 아들을 보살펴주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런 기회조차 없다"며 흐느껴 울었다.

병원에 입원한 고등학생 나촛 초티끌랑은 당시 엄마가 모는 차를 타고 범인의 차 옆을 지나고 있었다.

나촛은 "그 순간 범인이 차에서 나와 차 유리창을 향해 총을 쐈다. 바로 몸을 웅크렸고, 우리 차가 나무에 부딪히기 전까지 그저 가만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엄마는 어떻게 됐느냐는 한 정치인의 물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저었고, 누군가가 대신 나촛의 엄마는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절체절명의 순간도 적지 않았다.

쇼핑몰 3층에서 수제 공예품을 팔던 팔라완 쁠로유디(50)는 총소리가 나자 다른 상점 주인 및 고객들과 함께 가게 뒤편에 숨었다.

그러나 곧 발각됐다는 것을 깨닫고 보안요원 사무실로 달려간 뒤 내부 화재용 비상계단을 통해 간신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팔라완은 "보안요원이 범인에게 우리가 있는 곳을 노출하지 않으려면 신발을 벗으라고 해 간신히 피신할 수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음악 교사로 일하는 차나팁 솜사꾼(33)은 아내 및 세 살 난 딸과 함께 사건 당시 4층 화장실 내에 숨어 있었다.

화장실에는 차나팁 가족 외에도 20여명의 쇼핑객 및 점원들이 피신해 있었다.

이들은 범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단단히 잠갔다.

한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서 공포가 휩쓸고 간 적도 있었다고 타나팁은 전했다.

그는 "우리 중 한 여성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난 범인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그 여성이 문을 열자고 했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차나팁은 이후 소셜미디어 메시지나 전화를 이용해 경찰, 쇼핑몰 근무자 그리고 간호사 등에게 구조 메시지를 보냈다.

차나팁은 "쇼핑몰에 근무하는 친구가 쇼핑몰 폐쇄회로(CC)TV 실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얘기해 우리에게 범인의 위치를 시시각각 알려줬다"고 전했다.

언론은 이 CCTV 정보가 차나팁 가족을 비롯해 화장실에 대피한 이들의 목숨을 살리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이날 밤 나콘랏차시마시 도심에서는 시민 1천여명이 모여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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